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8부 능선을 넘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2일 두 회사의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대한항공이 지난해 1월 공정위에 기업결합 심사를 신청한 지 1년여 만이다. ‘일부 노선의 운수권 반납’이라는 강력한 꼬리표가 달렸지만 이 같은 조건 덕분에 다른 나라의 경쟁 당국이 두 회사의 기업결합을 불허할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공정위의 승인으로 세계 10위권 초대형 항공사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가게 됐다”면서도 “알짜 노선 반납으로 인해 두 항공사 합병의 시너지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공정위, 운수권 반납 조건으로 승인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이날 세종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번 항공 결합 건은 국내 대형 항공사 간 최초의 결합 사례”라며 “경쟁 압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도록 일부 노선에 대해 공정위가 시정조치를 부과했고 이 노선에 신규 진입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두 항공사가 모두 확보하고 있는 65개의 국제선 중복 노선 중 26개 노선(미주 5개, 유럽 6개, 중국 5개, 동남아 6개, 일본 1개, 대양주 등 기타 3개)은 독과점 우려가 큰 것으로 판단했다. 예컨대 미주 노선의 경우 중복 노선이 5개인데 두 항공사의 합산 점유율은 78~100%에 이른다. 델타항공을 제외하면 경쟁자가 없거나 1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은 2018년부터 조인트벤처 협약을 체결하고 한·미 노선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내선(편도 기준)의 22개 중복 노선 중 14개 노선(제주~김포·청주·부산·광주·진주·여수·울산)도 독과점 우려가 제기됐다. 이 노선들의 합산 점유율도 60∼100%로 나타났다. 특히 제주~진주, 제주~여수, 제주~울산 노선은 두 항공사가 통합 후 완전 독점하게 된다.
공정위는 앞으로 10년 동안 독과점 우려가 있는 이 노선들에 신규 항공사가 진입하려고 할 때, 통합 항공사가 보유한 국내외 공항 슬롯(Slot·특정 시간대에 이착륙할 권리)과 운수권 일부를 반납하도록 했다. 이 같은 시정 조치를 이행할 의무는 기업결합일(주식 취득 완료일)부터 시작된다. 독과점 우려가 있는 노선에 다른 항공사가 진입하기 전까지는 해당 노선에 대해 운임 인상 제한, 공급 축소 금지, 좌석 간격·무료 수하물 등 서비스 품질 유지, 항공마일리지의 불리한 조건으로 변경 금지와 같은 의무 사항이 부과된다.
◇해외 6국 승인만 남아
이번 공정위 승인으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를 인수하기 위해 이제 6국(미국·EU·일본·중국·영국·호주)의 기업결합 승인만 받으면 되는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공정위의 결정을 수용하며 향후 해외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항공업계에선 우리 공정위가 이번에 상당히 높은 수준의 슬롯·운수권 반납을 조건으로 승인했기 때문에 해외 경쟁 당국이 두 회사의 기업결합을 불허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앞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에는 세계 1·2위 조선사의 합병으로 독과점이 심화된다는 우려가 커서 EU가 기업결합을 불허했다”면서 “그러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두 회사를 합해도 세계 10위 규모이기 때문에 승인을 받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에어프랑스-KLM, 델타항공-노스웨스트, 루프트한자-스위스항공과 같은 글로벌 대형 항공사들의 합병도 모두 승인됐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한항공이 운수권·슬롯을 반납하는 과정에서 통합 항공사의 경쟁력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항공노선은 비유하자면 공장이나 마찬가지인데 알짜 노선 반납으로 인해 합병 시너지가 약해지게 됐다”면서 “운수권을 반납하면서도 통합 항공사의 인력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 난제가 대한항공 앞에 놓였다”고 말했다.
반면 저비용항공(LCC) 업계는 대한항공이 반납하는 운수권·슬롯 확보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LCC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LCC가 단거리 위주로 운항을 해왔지만 뉴욕·LA·런던·파리 등 알짜 노선을 받을 경우 장거리 취항도 가능하다”면서 “LCC 업계에 새로운 활로가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