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내놨다.
한전은 2021년 영업손실 5조8601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고 24일 밝혔다. 4분기(10~12월)에만 영업손실이 4조7303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한전의 영업손실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까지 치솟고, 환율이 급등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던 2008년(2조7981억원)의 두 배를 웃도는 역대 최대다. 이후 한전이 1조원 이상 적자를 낸 것도 문재인 정부 3년 차인 2019년 한 차례뿐이었다. 작년 매출은 코로나 회복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로 3.4% 증가한 60조5748억원을 기록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올해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분석 당시엔 유가가 연중 80달러 내외를 유지하면 올해 10조원 이상 적자를 예상했다”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영향 등으로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최근 유가 흐름을 감안하면 적자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기요금은 올해 4월과 10월 두 차례 오를 예정이지만 적자 폭을 감안하면 추가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 속 에너지 가격 상승 직격탄
한전은 2020년 코로나 충격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락하며 4조원대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원유·액화천연가스(LNG)·석탄 가격이 급등하자 지난해 곧바로 대규모 적자로 돌아섰다. 2020년 4월 배럴당 1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두바이유는 지난해 연말 80달러에 육박했고, 국내 LNG 수입 가격을 결정하는 JKM 시세는 2020년 1달러대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말 40달러대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탈원전 탓에 가동 원전이 계획보다 줄어든 데다 전력 수급 측면에서는 불필요한 재생에너지를 비싸게 사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고 지적했다. 애초 2017년 이후 차례로 가동에 들어가려던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가 탈원전 여파로 가동이 올해 이후로 미뤄지고, 올해까지 수명을 연장했던 월성 1호기는 3년 앞선 2019년 문을 닫으면서 지난해 가동 원전 설비 용량은 계획보다 5GW(기가와트)가량 줄었다. 여기에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정책적으로 보조금까지 주며 사들이다 보니 한전 재무 부담이 커졌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최근 들어 보조금을 감안한 태양광 전력 매입 단가는 kWh(킬로와트시)당 260원에 달한다”며 “50원 정도인 원전의 5배, 한전 판매 가격인 110원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기요금 현실화 불가피
연료비가 크게 오르면서 원가는 급등했지만 탈원전 비판을 피하고, 물가 안정을 위해 전기요금은 억누르다 보니 한전은 전기를 팔수록 손해 보는 구조가 됐다. 한전이 발전사에 지급하는 도매가격을 의미하는 계통한계가격(SMP)은 2020년 kWh당 평균 68.9원에서 지난해 94.3원으로 37% 급등했다. 올 들어서는 지난 23일 213.28원까지 급등했다.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210원에 사서 고객에게 110원에 파는 것이다.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전기요금을 상품 가격으로 보지 않고 정부가 좌지우지하다 보니 소비자들도 ‘전기세’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라며 “현 정부 초기 주무부처 장관이 ‘요금 인상은 없다’고 공언하며 전기요금을 정치화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전인 2016년 말 105조원이던 한전의 부채 규모는 대규모 적자 탓에 차입금이 확대되며 지난해 말 146조원으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한전이 부담하는 이자만 하루 90억원이 넘는다고 본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한전은 이자를 갚기 위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실정”이라며 “원전과 석탄 발전 같은 기저 설비를 줄인 상황에서 올해 천연가스 등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 더 취약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