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인상을 막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한국전력이 지난해 사상 최대 적자를 냈다는 소식에 김종갑(71) 전 한전 사장은 지난 23일 “미국 등 다른 나라들도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지만 그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을 망설이는 나라는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기 요금을 통제해 물가 인상을 막으려는 건 개발연대식 발상”이라며 “더구나 전력 공급이 부족한 한국은 원전, 화력, 신재생 중 어느 하나라도 도외시하면 한전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탈월전 정책이 한전의 어려움을 가속화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김 전 사장은 2018년 4월부터 2021년 5월까지 한전 사장을 지냈다. 취임 전인 2017년 4분기 한전은 적자를 냈고, 그는 취임 한 달 뒤인 2018년 5월 “한전 수익성이 개선될 때까지 비상 경영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한전은 2020년 말 4조86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단 1년 만인 지난해 한전은 5조8061억원의 사상 최대 규모 영업손실을 냈다. 탈원전 와중에 지난해 LNG·석탄 등 연료비가 급등했지만, 이를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영향이 컸다. 2021년 2월 배럴당 60달러대였던 국제 유가는 1년이 지난 현재 100달러를 넘보고 있다.

김 전 사장은 “한전 경영이 악화되면 차입금이 늘어나고 그 이자 부담은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사장 재직 당시 한전 차입금이 70조원이었고 이자로만 2조원을 냈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2020년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에 대해서도 “정치 논리가 아닌 시장 논리에 의해 전기요금이 결정되는 체제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체제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것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시장 논리에 따라 전기요금을 책정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한전 주식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며 “소액주주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정부가 한전 주주들의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은 정부 지분이 51%다. 김 전 사장은 “모범적으로 운영돼야 할 공기업을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개인 투자자들로선 예측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