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의 대러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우리 수출 기업들의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 보유한 반도체, 컴퓨터, 통신, 정보 보안, 레이저, 센서 장비 등의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만든 제품을 러시아에 수출하려면 미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모든 전자기기 핵심 부품인 반도체에는 미국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대부분 들어갔기 때문이다. 러시아 현지에 TV와 가전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한국산 반도체 부품 공급이 중단되면 러시아뿐 아니라 독립국가연합 지역 전반에 걸쳐 완제품 판매에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칼라구 지역에서 TV 공장을,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에 TV와 세탁기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로 들어가는 부품이 막힌다면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설계 기술이 적용된 칩(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이 탑재되는 스마트폰 수출도 타격이 우려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30%로 1위였다. 반도체의 경우 직접 수출은 규모가 크지 않아 그나마 충격이 덜할 전망이다. 한국의 대러시아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7400만달러(약 885억원)로 전체 수출 물량의 0.06%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수출 규제가 국내 산업계에 미칠 파장을 파악하는 데는 시일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 상무부가 수출 통제를 적용한 품목은 총 57개이지만 자세한 리스트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스트는 오는 3일 미 상무부가 공개하는 관보에 공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리스트가 공개되더라도 기업들의 생산 품목이 제재 대상에 포함되는지에 대해 기업들은 일일이 산업부 산하 전략물자관리원에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IT 업계 한 관계자는 “어떤 부품이나 기술이 제재 대상이 되는지 알아야 대비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국내와 미국 대관 라인을 통해 제재 품목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 업계 관계자도 “선박에 탑재하는 외국산 기자재에 미국 기술이 적용되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할 상황”이라면서 “미국의 수출 통제 적용 범위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하면 그에 맞춰서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