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지난달 전자상거래 업체 티몬과 새로운 ‘구독 판매 모델’을 선보였다. 소비자가 티몬에서 식품을 월 3만원씩 1년간 구매하기로 하고 제휴 카드를 발급받아 쓰면, 40만9000원짜리 LG 광파오븐을 6만9000원에 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화장품을 1년간 구독하면 39만9000원짜리 프라엘 미용기기도 35만원 할인된 가격(4만9000원)에 살 수 있다.
이뿐 아니다. LG전자는 와인 유통 업체와 제휴를 맺고 조만간 와인을 집에서 구독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와인셀러를 할인 판매하는 구독 서비스도 내놓을 계획이다. LG전자 관계자는 “다양한 분야의 업체와 협업을 늘려가면서, 고객도 부담없이 가전을 구매할 수 있도록 구독 방식을 도입한 것”이라고 했다.
◇가전 업계에 확산하는 ‘구독 경제’
가전 업계에 ‘구독 제휴 판매’가 확산하고 있다. 가전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고가(高價)인 가전 구매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소비자가 구독 상품을 구매하면 가전을 싸게 주는 식이다. 마치 ‘프린터’와 ‘잉크’의 비즈니스 모델처럼, 서로 단짝인 파트너를 찾아 소비자를 공동으로 공략하는 것이다.
이 같은 모델을 확산시킨 것은 삼성전자다. 작년 7월 젊은 세대를 겨냥해 밀키트와 가정간편식(HMR)을 손쉽게 조리해주는 요리기기 ‘비스포크 큐커’를 내놓으면서 구독 방식을 선보였다. 월 3만9000원 이상 식료품을 2년간 제휴 카드로 구매하기로 약정하면, 59만원짜리 제품을 최저 1만원에 준 것이다. MZ세대의 반응은 뜨거웠다. 삼성은 “출시 한 달 만에 1만대가 넘게 팔렸는데, 구매 약정을 통한 판매가 전체 물량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고 했다. 이에 고무된 삼성은 이 방식을 다른 가전으로 확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전 중심의 생태계 구축
가전 업체는 구독 모델이 단순한 매출을 늘리는 것을 넘어 ‘가전 중심의 생태계’를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과거엔 전자레인지나 오븐 같은 요리 기기를 한 번 판매하면 끝이었지만 구독 모델은 소비자뿐 아니라 제휴를 맺은 식품 업체와도 지속적인 관계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식품 구독 약정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파트너 식품사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면서 “최적의 메뉴를 개발하고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는 조리법도 계속 적용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삼성전자는 과거 각 식품사 직영몰이었던 식품 구매처를 삼성닷컴에 추가로 구축했다. 이를 통해 자사 가전 구매 고객이 누구이며, 어떤 음식을 선호하는지 등 세세한 정보를 삼성 역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가전 업체가 가질 수 없었던 데이터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제휴사들은 삼성·LG 같은 대기업을 통해 구매력 있는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 약정 기간에 이들을 충성 고객으로 끌어들일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는다. 삼성과 제휴를 맺은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구독 약정 모델을 도입한 이후, 자체 식품몰 신규 고객 가입률이 전년 대비 23% 늘었다”고 했다. 다른 업체는 “고객들의 재구매율이 80%에서 90%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가전사가 구축한 모델에 올라타면 지속적인 매출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작년 7월 8곳이었던 식품 제휴사는 지난 1월 현재 15곳으로 늘었다. CJ제일제당, 오뚜기, 프레시지 등 유수의 식품 업체들이 모두 합류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도 원래 사려던 제품을 ‘구매 약정’만 하면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 체험할 수 있다”며 “기존의 일회성 가전 판매 구조에서 벗어나 소비자에게 유의미한 경험을 주는 점에서 긍정적인 방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