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일 통도사를 방문한 이재용 부회장과 홍라희 전 관장/사진=뉴시스

지난 1월23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 고(故) 이종왕 전 삼성전자 법률고문의 빈소를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영정 앞에서 엎드려 큰 절을 하며 5분 가까이 오열했다. 이 부회장은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다음날인 24일에는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이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함께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며 한참 울었다.

지난 11일 이 부회장과 홍 전 관장이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이 전 법률고문의 49재를 유족들과 함께 지내며 고인을 극진히 예우한 것이 알려지자, 재계에서는 ‘이 전 고문이 어떤 사람이기에 삼성가에서 저렇게 챙기는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진관사는 이건희 회장의 위패가 봉안된 사찰이다. 삼성가는 지난 2020년 12월12일 이건희 회장의 49재도 이곳에서 지냈다. 49재는 고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49일에 걸쳐 7번의 재를 지내는 불교식 전통으로, 이 부회장은 지난달에도 진관사를 따로 찾아 이 전 고문의 제사의식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7기 동기인 이 전 고문은 1999년말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으로 ‘옷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하다가 수뇌부와 갈등으로 사직한 대표적인 강골검사로 꼽힌다. 술을 한 방울도 하지 못하는 그는 사건 처리에 있어서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유명했지만, 후배 검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때는 따로 불러 밥도 사주고 격려해주는 등 마음도 따뜻한 검사였다. 이 때문에 검사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윤석열 당선인도 지난 1월24일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혼자 이 전 고문의 빈소를 찾아 30분 가까이 조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수사기획관 시절의 이종왕 전 삼성 법률고문./조인원 기자

검찰을 떠난 이 전 고문은 2001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합류했다, 2004년부터는 삼성그룹 법률고문 겸 법무실장(사장급)으로 일했다.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본부장이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삼고초려가 아니라, 십고초려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에 의해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이 불거졌다. 이 전 고문이 삼성에 합류하고 얼마 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떠났기 때문에 이 사건과 관련이 없었지만, 그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한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그해 11월 이 전 고문은 삼성을 떠나며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김용철 변호사의 부인이 김 변호사의 주장을 토대로 지난 8~9월 세 차례에 걸쳐 협박성 편지를 회사에 보내 왔을 때 제가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있었지만 근거없는 황당한 주장이어서 타협하지 말자고 했고 회사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도 변호사인데 편지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은 근거없는 사실을 폭로해 회사를 곤경에 빠뜨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 선을 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 고문은 또 “이런 파렴치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변호사라는 사실에 대해서 같은 변호사로서 큰 자괴감을 느낀다”며 사내변호사는 임직원들이 편안하게 경영활동을 잘 할 수 있게 하는 게 임무인데 거꾸로 법무실이 임직원들에게 폐를 끼치게 돼 면구스럽다고도 했다. 그는 사직서를 제출하기 앞서 변호사협회에 변호사 자격도 반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학수 실장 등이 사임을 말렸으나, 변호사 자격을 이미 반납했는데 어떻게 법무실장 일을 하느냐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을 떠난 뒤에도 조직을 위한 조언은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일가에게 쉽게 할 수 없는 쓴소리를 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용철 특검 당시, 삼성그룹이 쇄신책을 논의할 때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퇴진해야한다고 이야기를 꺼낸 사람도 이 전 고문이었다. 그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배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은 짐들은 다 바다에 던져야 한다. 회장직을 내려놓으셔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재용 전무에게도 직책을 다 내려놓고 백의종군하라고 이야기한 사람도 이 전 고문이다. 삼성 소식에 정통한 한 재계인사는 “이 전 고문은 누구도 할 수 없는, 그러나 꼭 해야하는 말을 이건희 회장에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2010년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에 복귀하자, 이 전 고문도 다시 돌아와 2015년까지 삼성전자 법률고문을 맡았다. 이때도 이 회장이 당시 미국 여행 중이었던 이 전 고문을 라스베이거스로 초청해, 좀 더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고문이 삼성을 떠나고 얼마 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자, 그는 변호사협회에 다시 변호사 등록을 해 구치소 접견까지 다니는 등 적극적으로 도왔다. 1·2심 재판도 빠짐없이 참석해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이런 그의 노력에 대해 이 부회장 측에서 상당한 금액을 제시했지만, 이 전 고문은 초임 변호사가 받는 수준인 최소한의 변호사 비용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이 전 고문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의 사건에 너무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이라며 상당히 자책했다는 후문이다.

2020년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삼성가에서 상속지분 배분이 원만하게 조율된 데에도 이 전 고문이 일정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인사는 “삼성 오너가에서 이 전 고문에 대한 신임이 대단했다”며 “유족들 입장이 서로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이 전 고문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큰 불협화음없이 조율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전 고문의 유족들은 발인이 끝난 뒤, 곧바로 수목장을 할 계획이었지만, 이 부회장의 제안으로 진관사에서 49재를 지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한 비용은 모두 이 부회장이 부담했다. 이 전 고문의 지인은 “고인은 결벽증이라고 할 만큼 자기자신에게는 워낙 철저했기 때문에, 아마 살아계셔서 이 부회장이 비용부담한 것을 알았다면 펄펄 뛰셨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