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 6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구자열 무협회장,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윤 당선인, 손경식 경총회장, 최진식 중견련 회장. /국회사진기자단

21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4층. 윤석열 당선인과 함께 자리한 경제 단체장들은 저마다 준비해 온 자료를 원형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윤 당선인은 “오늘은 제가 말씀하기보다는 경제계에 계신 분들의 애로 사항이나 정부에 바라는 말씀을 듣기 위해 모신 것”이라며 말을 시작했고, 이후 그의 모두(冒頭) 발언은 3분이 채 되지 않았다. 경제 단체장들은 25분 동안 돌아가면서 준비한 건의 사항을 쏟아냈다. 윤 당선인은 조용히 그들의 말을 들으며 자주 메모했다. 이후 2시간가량 진행된 비공개 오찬에서도 기업인들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제시했고, 윤 당선인은 그들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 개혁,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윤 “상식에 맞춰 바꿔나갈 것”

경제 단체장들은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노사 갈등이 국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불법 파업 등 잘못된 부분에는 공권력 집행이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노동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노동 개혁 문제에는 대·중소기업 입장 차가 없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도 노사 관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언급했다. 김 회장은 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대기업엔 전혀 영향이 없다. 주 52시간제도 2교대를 3교대로 전환하며 일할 사람을 구해야 하는 중소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대부분 하청을 맡고 있는 중소기업이 주 대상”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중소기업들이 가장 고통받았다. 이런 부분은 정말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우리 기업들이 외국 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는 규제는 개선해야 한다”며 “노사 간 힘의 균형이 확립돼 기업이 맘 놓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도 “안전도 중요하지만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부분은 글로벌 기준에 맞춰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구자열 무역협회 회장은 무역 부문에서 시급한 극복 과제에 대해 건의했다. 구 회장은 “최근 무역 질서는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미국은 우리 기업의 전략 투자처로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미국과 통상 협력이 더욱 긴밀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글로벌 공급망 문제에 대해서도 “개별 기업 대응이 어려운 만큼 정부에서 각별하게 관심을 갖고 국가 정책적 관점에서 지원해달라”고 말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경제와 안보는 한 몸”이라며 “반도체·배터리·바이오 같은 산업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핵심 원천 기술을 좀 더 만들어야 미래 안보도 더 튼튼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맞춘 국가 전략 산업 발전이 필요하다. 범정부 회의체에 민간도 참여하게 해주면 정례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윤 당선인은 모두 발언에서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 경제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공개 오찬에서는 “기업이 해외에 도전하는 것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 대표 선수나 다름없다. 운동복도 신발도 좋은 것 신겨 보내야 하는데, 모래주머니 달고 메달 따 오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며 “새 정부는 여러분이 힘들어했던 부분을 상식에 맞춰 바꿔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대·중소기업 양극화 문제도 거론

대·중소기업 양극화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특히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대·중소기업 양극화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지적했다. 기업 자율에 맡기더라도 이런 근본적 문제점을 정부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김 회장은 “(기업 수) 0.3%의 대기업이 (전체 영업) 이익의 57%를 가져가고, 99%의 중소기업은 25%밖에 못 가져간다”며 “결국 중소기업은 월급이 대기업의 절반에 불과하고, 젊은 근로자가 오지 않아 저성장 늪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최진식 중견련 회장은 “1년에 300개, 400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매년 새로 편입되고 있다”며 “이 중견기업들이 더 성장해 전경련 등 대기업이 하는 클럽으로 가입시키는 게 목표다. 대·중소기업 상생 방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인은 “양극화 심화와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고착화를 극복하려면 국가의 역동적 혁신 성장을 통한 경제 재도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