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동생의 대학 동창인 박두선 부사장을 새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한 대우조선해양의 ‘알박기 인사’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이 사실상 이번 인사를 주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산은은 “독립 기관인 경영정상화 관리위원회가 독자적으로 사장 후보를 추천했다”는 입장이지만, 위원회에 산은 관련 인사가 다수 포함된 데다 산은이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보유해 사장 선임 과정에서 산은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 하루 전날 이사회를 열고 신임 대표이사 선임 안건을 처리한 사실도 확인됐다. 야당 후보였던 윤석열 당선인의 승리까지 염두에 두고 속도전 치르듯 안건을 처리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사장 추천 관리위원회, 산은 관련 인사 과반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을 신규 추천하는 권한은 2017년 5월 출범한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 관리위원회’(이하 관리위원회)가 갖고 있다. 기존에는 채권단 중심으로 경영평가위원회와 경영진추천위원회가 구성돼 있었는데 이 기능을 관리위원회로 통합해 일원화한 것이다. 관리위원회는 산은·수출입은행과 같은 채권은행이나 회사 경영진과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관리·감독 기구가 대우조선에 필요하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조선업계에선 이 관리위원회가 100% 독립적으로 운영되기엔 태생적 한계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조선업체 고위 관계자는 “관리위원회를 만든 주체가 산은과 수은인데 어떻게 독자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이 될 수 있겠느냐”면서 “관리위원들도 각자 직업을 갖고 비상근으로 일하기 때문에 관리 업무에만 매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산은과 수은은 ‘지원단’과 대우조선에 파견한 ‘경영관리단’을 통해 관리위원회를 실무적으로 지원해왔다.
현 관리위원회 위원 중에도 산은과 관련된 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다. 산은은 관리위원회를 조선업·금융·구조조정·법무·회계·경영 분야에서 8인의 민간 전문가(1인은 겸직 문제로 자진 사퇴)로 구성했는데 금융 전문가로 합류한 최익종 전 코리아신탁 대표이사가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이다. 법무와 회계 분야에서 참여한 법무법인 태평양과 회계법인 삼정은 산은의 의뢰를 받아 대우조선의 실사를 한 바 있다. 경영 분야 전문가로 참여한 한 인사는 산은의 추천을 받아 STX팬오션 관리인을 맡은 이력이 있다. 7명 중 4명이 산은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사인 것이다. 조선업계에선 “산업은행이 주주총회에서 사장 선임을 최종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산은 측 인사가 다수 포진한 관리위원회가 산은의 뜻과 다른 인사를 추천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대선 하루 전날 이사회 열고 박두선 선임
대우조선해양이 이번 대통령 선거 하루 전날 이사회를 열고 박두선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한 배경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관리위원회는 지난 2월 24일 박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내정했고, 대우조선 이사회는 대선 전날인 3월 8일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박 사장은 3월 28일 주총을 통해 최종 선임됐다.
산은과 대우조선 측은 “전임 사장의 임기가 3월에 만료되는 점을 고려한 일정”이라고 밝혔지만, 최근 사장 선임 과정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빠른 편이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전임 이성근 사장의 경우 2019년 3월 8일에 관리위원회에서 내정됐고, 그해 3월 14일에 이사회를 통해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에 앞서 사장으로 일한 정성립 사장은 2015년 4월 6일 내정됐고 5월 말 임시 주총에서 의결됐다. 재계 관계자는 “대선 일정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사실상 공기업인 대우조선 대표이사 교체 인사를 예년보다 서두를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관리위원회가 사실상 박 사장을 내정해 놓고 형식상 다른 후보들을 검토하는 절차를 밟았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이 조선업 호황과 함께 수주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면서 실적 개선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에 조선업계에선 이성근 전 사장의 연임을 전망하는 시각이 많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박 사장이 제대로 회사를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