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이사회 일정을 당초 3월 14일에서 앞당겨 달라고 요청해 20대 대통령 선거 전날인 3월 8일로 변경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도 산은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절차가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산은은 그동안 ‘알박기’ 논란이 일고 있는 박두선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 개입한 것이 없다고 해명해왔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본지가 4일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를 통해 입수한 대우조선해양 경영진 추천 절차 자료에 따르면 대표이사 추천 권한을 갖고 있는 경영정상화 관리위원회는 지난 1월 이번 대표이사 선임 일정을 확정했다. 당초 일정에는 1월 12일 경영진 후보자 추천 절차를 개시하고 2월 24일 관리위원회가 대표이사 후보자를 확정한 뒤, 3월 14일 정기 이사회를 열고 이사 선임 안건을 의결하게 돼 있었다. 이후 3월 29일 주총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신임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선 전날인 3월 8일에 정기 이사회가 열려서 박두선 당시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주총도 당초 일정보다 하루 빠른 3월 28일에 열렸다. 박 사장은 문재인 대통령 동생의 대학 친구로 문 정권 출범 이후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사장 자리에 올랐다.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산은에서 대우조선 이사회에 일정 조정을 긴급하게 요청한 것으로 안다”면서 “돈줄을 쥐고 있는 산은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던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은 어쩔 수 없이 이사회를 해당 일자로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야당 후보였던 윤석열 당선인의 승리를 염두에 두고 서둘러 안건을 처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대표이사 후보자를 검토하는 과정에도 산은이 관여할 수 있는 절차가 담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진 추천 절차에 따르면 경영정상화 관리위원장은 관리위원들이나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로부터 신임 대표이사 추천서를 받은 즉시 관리위원회 지원단에 송부하게 돼 있다. 지원단은 산은이 관리위원회를 실무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이 지원단이 추천서에 나온 해당 후보자에 대한 검토서를 각 관리위원들에게 전달하면 이를 검토해 최종 후보자를 선정하게 된다. 한 조선업계 임원은 “추천서를 산은이 검토해 차기 대표이사를 선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관리위원회 위원 다수가 산은 측 인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원단의 검토서에 따라 차기 대표이사가 결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지난 2월 말~3월 초 대우조선해양의 국내외 사업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이어서 일주일이라도 빨리 차기 대표이사를 선임해 경영 공백을 없애는 게 좋겠다고 요청했고, 대우조선이 이사회 일정을 변경했다”면서 “헤드헌팅 업체들이 대표이사 후보자에 대한 리포트를 만들면 이것을 받아서 관리위원회에 전달하는 역할만 했을 뿐 산은이 리포트를 평가하거나 가공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산은 측은 리포트 가공이나 평가서 첨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원본 공개 요청에 대해 “개인 신상 정보가 담겨 있어 공개는 어렵다”고 밝혔다.

산은은 그동안 박 사장 선임 논란에 대해 “별도 조직인 경영정상화 관리위원회에서 결정한 사안인 데다 이미 2월 말에 후보 선정을 마친 상황이었다”면서 “선임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혀왔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의 두 차례 인사 자제 요청에도 대우조선해양 신임 대표이사 선임을 강행한 산은이 이번 사태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그동안 거짓 해명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논란이 확산하면서 대우조선해양 내부에서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 회사 관계자는 “지난 1월 현대중공업과의 기업결합 심사가 EU(유럽연합)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회사의 앞길이 불투명해졌는데 대표이사 알박기 논란까지 나와 당혹스럽다”며 “새 정부와 갈등을 빚는 인물이 매각과 경영 정상화라는 대우조선해양의 당면 과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