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부평 1공장은 이달 들어 기존 2교대 근무를 1교대 근무로 전환했다. 이 공장에서는 한국GM 전체 판매량의 80%를 차지하는 차량인 트레일블레이저를 생산해왔는데 전반조(오전 7시~오후 3시)만 작업하고, 후반조(오후 3~11시)는 일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GM 관계자는 “중국 현지 협력업체가 생산하는 브레이크 시스템 부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확진자 0명) 정책의 일환으로 지난달 말부터 상하이를 봉쇄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공장이 줄줄이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중국산 부품 수급 차질로 인해 국내 공장 생산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 이후 발생한 물류 대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 더해 중국 상하이 봉쇄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산업계가 최악의 퍼펙트 스톰 위기를 겪게 됐다”고 말했다. 퍼펙트 스톰은 크고 작은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초대형 경제 위기를 말한다.
◇상하이발 물류 차질 퍼펙트 스톰
중국 상하이시는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자 지난달 28일부터 황푸강을 기준으로 단계적 봉쇄에 들어갔다. 당초 시정부는 황푸강 동쪽 지역은 지난달 28일 오전 5시부터 4월 1일 오전 5시까지, 황푸강 서쪽 지역은 4월 1일 오전 3시부터 5일 오전 3시까지 순차적으로 봉쇄한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봉쇄 기간 감염자가 계속 급증하자 시정부는 봉쇄 정책을 무기한 연장하고 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재 상하이항은 큰 무리 없이 돌아가는 상황이다. 한 해운업체 관계자는 “중국이 상하이시를 봉쇄했을 뿐 상하이항은 열어놨기 때문에 선박들은 거의 차질 없이 항만에 드나들고 있다”면서 “평소 대비 10~20척 정도 대기하는 선박 수가 늘어났지만 아직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상하이항은 연간 물동량 기준 4700만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로 세계 최대 무역항이다.
그러나 내륙과 상하이항을 오가며 물건을 실어 나르는 트럭의 이동량이 상하이시 봉쇄 조치로 인해 평소 대비 30% 정도 줄어 물류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또한 중국 검역 당국이 컨테이너 화물에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실시하는 등 검역 절차를 까다롭게 적용하면서 통관에 걸리는 시간도 평소 대비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IT 업계에도 영향 미쳐
이로 인해 상하이 현지에 진출한 국내 업체들의 피해 사례도 늘고 있다. 농심은 지난달 28일부터 연간 라면 3억5000개를 생산하던 상하이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가 지난 12일에야 부분 재개했다. 화장품을 연간 1억개 생산하는 아모레퍼시픽의 상하이 공장은 지난 1일부터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중소기업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20년간 한국에서 신선식품을 수입해 상하이에서 판매하고 있는 유통업자 이모(61)씨는 “백화점·마트가 폐쇄되면서 지난달 31일에 들여온 물건을 모두 폐기했다”면서 “30명에 달하던 직원 수도 2명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상하이발 물류 차질은 IT(정보기술) 업계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애플의 중국 내 협력업체인 대만 페가트론은 지난 12일 상하이와 인근 장쑤성 쿤산의 아이폰 조립공장 2곳의 가동을 중단했다. 애플 노트북 맥북 협력업체인 광다컴퓨터도 지난 13일부터 상하이 공장의 조업을 중단했다. 그 결과 세계 곳곳에서 맥북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최대 2개월 이상 배송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또한 중국산 부품 공급이 지연되면서 노트북 생산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 부품 수입 비중이 높은 분야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17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배터리 부문 수입액의 80.2%, 반도체 부문 수입액의 30.6%, 자동차 부문 수입액의 12.3%를 중국이 차지했다. 정형곤 KIEP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와 휴대전화 부문은 상하이로부터의 부품 수입 비율이 각각 11.2%, 14.3%로 높다”면서 “한국과 경제 관계가 더 긴밀한 장쑤성, 광둥성으로 코로나가 확산하면 상하이 봉쇄보다 영향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