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식자재 중간 도매업을 하는 소상공인 이모씨는 최근 ‘A급 다마스’를 구하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지역 중고차 판매 업체들을 돌아다녔지만 번번이 허탕을 쳤다. 상태 좋은 차는 가격이 800만~900만원으로 출고가와 거의 차이가 없는 데다가, 그마저도 시장에 나오는 족족 빠르게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이씨는 “다마스 단종설이 나올 때마다 자영업자 사이에 ‘사재기’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었는데 왜 그랬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며 “작년 마지막 판매 때 미리 사둘 걸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자영업자의 발’로 불렸던 한국GM의 다마스, 라보 등 경형 화물차가 단종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소상공인·자영업자 사이에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고 있다. 다마스와 라보는 트럭보다 작으면서 400~500㎏가량의 짐을 실을 수 있어 무거운 짐을 나를 일이 잦은 자영업자들이 업무용으로 많이 사용해왔던 차량이다. 작년 1분기를 끝으로 판매가 중단됐으나, 여전히 중고차 시장에선 인기를 끌며 500만~600만원대에 꾸준히 거래되고 있다. 1년간 다양한 형태의 차량이 대안으로 대두됐지만 출고가 1000만원 이하인 다마스·라보의 빈자리를 채우지는 못한 탓이다.
중고차 거래 플랫폼 엔카닷컴에 따르면 다마스·라보의 중고 거래가는 지난 1년간 소폭 하락하는데 그쳤다. 2019년식 2인승 뉴다마스는 작년 1월 585만원이었던 평균 중고가가 단종 직전인 3월 622만원까지 뛰었다가, 올해 1월 543만원에 거래됐다. 2019년식 뉴라보 역시 작년 1월(565만원)과 올해 1월(540만원) 가격 차이가 25만원에 불과했다. 엔카닷컴 관계자는 “다마스와 라보는 다른 중고차에 비해 가격 변동폭이 적은 편”이라며 “자영업자 등의 수요가 꾸준히 있어 가격 방어가 잘 된 것”이라고 했다.
다마스·라보는 1991년부터 대우자동차(한국GM 전신) 창원공장에서 생산돼 국내 소상공인에게 인기를 끌어왔다. 국내 유일의 경상용차로 30년간 38만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다. 차량이 작고 내부 구조가 단순한 대신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어 소상공인과 함께 골목골목을 누볐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배달업에 뛰어든 자영업자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두 차량은 환경규제와 안전기준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13년 제조사인 한국GM이 차량 개선이 어렵다고 판단, 단종 결정을 내린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워낙 초저가 차량이다 보니 수익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기준 충족을 위한 대대적 설비 투자가 어려웠다”고 했다. 당시 소상공인 단체 등에서 “자영업자의 발을 없애면 어떡하느냐”며 정부에 항의하면서 2019년까지 배출가스 안전기준 적용이 유예됐지만, 결국 2021년 1분기 마지막 판매를 끝으로 단종됐다.
두 차량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한때 현대차의 ‘포터’, 기아의 ‘봉고’ 등이 떠올랐지만 실제 대체재가 되지는 못했다. 세탁물 배달업체 사장 A씨는 “900만원대 다마스를 사다가 1600만원대 포터를 사려면 당연히 부담스럽지 않겠느냐”고 했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도 굳이 1000만원 이하의 초저가 차량을 새로 만드는 건 ‘밑지는 장사’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초저가 전기차도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중국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뛰어넘지는 못했다”고 했다. 또 중국 전기차는 충전 주기가 짧고 수리도 어려워 자영업자 영업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앞으로도 다마스·라보와 비슷한 차량이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 완성차 회사 관계자는 “업계 전체가 수익성이 좋은 SUV나 대형차량 생산 위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새로 경상용차 생산 설비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