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저녁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는 20·30대 관객 수백명이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공연 제목은 ‘심포니 오브 메이플스토리’. 60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넥슨의 인기 게임 메이플스토리 삽입곡을 2시간에 걸쳐 차례로 연주했다. 공연 막바지 대표 캐릭터 ‘핑크빈’이 지휘자 손을 잡고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선 함성이 터져 나왔다. 넥슨 관계자는 “당초 1회 공연으로 끝내려 했지만 문의가 쏟아져 12·13일 이틀간 공연을 했다”고 말했다.
게임 업체들이 사업을 다각화하고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게임 콘텐츠의 활용 범위를 파격적으로 넓히고 있다. 게임 기반 웹툰·영화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공연, 도시락 출시, 장편소설 출간까지 가히 ‘영역 파괴’ 수준이다. 게임 콘텐츠를 활용한 각종 콘텐츠에서 발생하는 간접 매출이 게임 사용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직접 매출(2000억달러)의 절반에 이를 만큼 급성장한 데다 인기 게임들이 모바일·콘솔·PC 버전으로 재출시되며 마케팅의 필요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종합 콘텐츠 회사로 변신한 게임업체들
최대 시장이던 중국 진출에 제동이 걸리면서 해외 진출과 사업 다각화가 절실한 국내 게임 업체들은 콘텐츠 활용 다각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넥슨 오웬 마호니 일본 넥슨 대표는 지난달 주주서한에서 “고(故) 김정주 창업주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넥슨을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넥슨은 올해 2월 미국의 유명 영화·드라마 제작사 AGBO에 6000억원을 투자했다. 외신들은 “넥슨이 ‘아시아의 디즈니’가 되려고 한다”고 전했다. 크래프톤 김창한 대표는 지난달 31일 주총에서 “(게임 기반) 웹툰 사업뿐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제작에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게임업체들은 유통 분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크래프톤은 CJ프레시웨이와 손잡고 도시락을 개발 중이다. 모바일 게임에 등장하는 회복 아이템인 ‘힐박스’를 닮은 고기 반찬 도시락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사 컴투스는 게임 이름을 딴 과일 세트 10만 상자를 올 초 롯데마트에서 완판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 이용자 저변이 넓어지면서 게임 연계 콘텐츠·상품이 게임업체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떠올랐다”며 “게임 콘텐츠 확장은 기존 사용자의 충성도를 높이면서 새로운 이용자 유입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출판계·OTT 점령하는 해외 게임들
해외에서는 게임이 원작인 작품들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주름잡고 있다. 지난달 20일 넷플릭스는 올해 하반기 방영 예정인 애니메이션 영화 ‘철권: 블러드라인’ 예고편을 공개했다. 과거 ‘오락실 시대’를 주름잡았던 일본 격투 게임 철권은 1994년부터 9차례 변신을 거쳐 ‘철권 7′이란 이름의 PC·콘솔 게임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미 밸브 코퍼레이션이 2013년 출시한 ‘도타 2′를 애니메이션화한 ‘도타:용의 피’도 올해 1월 시즌 2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중국에서도 게임 기반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현지 게임업계 1위 텐센트는 지난달 18일부터 비리비리·망고tv 등 현지 OTT에서 게임 ‘왕자영요’ 기반의 애니메이션 ‘왕자가 맞니?’ 14부작을 방영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중국에서는 19개 게임업체가 29편의 자사 게임 기반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출판시장도 곧 게임 업체들이 뒤흔들 조짐이다. 미 라이엇 게임즈는 이용자가 1억명이 넘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소설 ‘대몰락’을 오는 9월 출간한다. 라이엇게임즈는 자사 게임 캐릭터를 모아 가상 K팝 걸그룹 ‘K/DA’와 가상 힙합 그룹 ‘트루 대미지’로 데뷔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