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제4 이동통신 사업자인 디시(DISH) 네트워크의 5G(5세대 이동통신) 통신 장비 공급사로 3일 선정됐다. 수주 규모는 1조원 이상으로, 삼성전자가 2020년 미국 1위 통신업체 버라이즌과 맺은 7조9000억원 계약에 이어 미국 내 5G 통신 장비 공급 중 둘째 규모다. 이번 수주를 따내기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디시 네트워크 회장과 단둘이 5시간 동안 북한산 등산을 하는 등 수주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 업계에서는 그동안 이 부회장의 부재로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 노키아, 에릭슨에 밀려 번번히 고배를 마셨던 삼성전자가 공격 경영에 나서는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이 부회장은 AI(인공지능),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스템반도체, 바이오와 함께 5G를 삼성의 미래 성장 사업으로 꼽고, 전담 조직 구성, 연구개발, 영업·마케팅까지 전 영역을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미국 통신사와 1兆 공급 계약

삼성전자는 디시 네트워크의 미국 5G 전국망 구축을 위한 주요 통신 장비를 공급할 예정이다. 소프트웨어(SW) 기술을 바탕으로 주파수 자원을 유연하게 할당하는 차세대 5G 가상화 기지국 장비 등이 포함됐다.

디시 네트워크는 1980년 위성TV 서비스 기업으로 시작해 2020년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한 후발 주자다. 내년까지 미국 인구의 70%를 커버하는 5G 전국망을 구축한다는 목표다. 존 스위링가 디시 네트워크 최고운영책임자(사장)는 “삼성전자의 5G 가상화 기지국 등 차세대 통신 기술력이 디시의 5G 네트워크 구축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측은 “미국 이동통신 시장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디시 네트워크에 5G 통신 장비를 공급하면서 미국 내 점유율을 높일 수 있게 됐다”며 “이를 발판 삼아 글로벌 시장 공략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5G 시장 공략과 동시에 차세대 통신 기술인 6G(6세대 이동통신) 분야에도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더 멀리 내다보며 선제적으로 미래를 준비하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뜻에 따라 5G 이후 차세대 통신 분야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통신은 백신만큼 중요한 인프라인 만큼,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아쉬울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오는 13일 6G 관련 세계적 전문가들과 함께 차세대 통신 기술을 논의하는 ‘삼성 6G 포럼’을 처음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이재용, 미국 통신사 회장과 5시간 북한산 등산

이 부회장은 ‘등산 애호가’인 디시 네트워크 창업자 찰리 에르겐 회장의 마음을 잡기 위해 함께 북한산 등반을 하는 등 이번 계약 성사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9월 에르겐 회장이 방한하자, 이 부회장은 공식 비즈니스 미팅 전날인 일요일 오전 직접 차량을 운전해 그가 머무는 서울 시내 호텔을 찾았다. 이어 에르겐 회장과 단둘이 북한산으로 가 5시간 동안 단둘이 등산을 했다고 한다. 에르겐 회장이 킬리만자로산,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한 등산 애호가라는 점을 겨냥해 산행을 제안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국정 농단 사건 등으로 삼성 경영진들이 수감되자, 골프를 끊고 등산으로 취미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날 북한산 산행에서 개인적인 일상 이야기부터 삼성과 디시 간 향후 협력 방안 등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고 이를 계기로 신뢰 관계를 구축해 대규모 수주로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2021년 11월 17일(현지시각) 미국 뉴저지주 버라이즌 본사에서 한스 베스트베리(Hans Vestberg) CEO(왼쪽)와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 부회장은 2020년 버라이즌(7조9000억원), 2021년 NTT 도코모(2조4000억원)와의 공급 계약 당시에도 해당 통신사 CEO를 직접 만나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