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석유화학·에너지 부문 계열사인 한화솔루션·한화에너지·한화임팩트·한화토탈에너지스가 지난 4일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대란, 금리 인상 같은 중첩되는 대외 불안 요소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날 회의에서 남이현 한화솔루션 대표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컨틴전시 플랜(위기 대응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주요 기업들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거나 조직 개편을 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긴박하게 위기 대응 전략을 찾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상하이 봉쇄로 글로벌 공급망이 더욱 취약해진 상황에서 원자재 급등과 미 금리 인상 본격화라는 대외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국내 기업들도 피해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속에서도 지난해까지 잇따라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던 기업들은 해가 바뀌자마자 급격히 악화한 경영 환경에 당황한 모습이다. 한 10대 그룹 임원은 “아무리 탁월한 요리사라도 쌀 없이 밥을 못 짓는 것처럼 원자재를 못 구하면 공장을 세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긴급 회의 열고 임원 임금은 삭감

한화그룹은 지난달 말에도 기계·항공·방산 부문, 금융 부문, 건설·서비스 부문이 각각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4일 회의까지 한화그룹의 4개 사업 부문이 차례로 생산 차질을 막기 위한 위기 대응에 돌입한 것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이번 긴급 사장단 회의는 정례회의와 달리 무거운 분위기에서 열렸다”면서 “사장단의 표정에서도 매우 강도 높은 위기 의식이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의 지주회사 한국앤컴퍼니는 지난달부터 전 계열사 임원 임금을 20% 삭감했다. 계열사 임원을 합치면 100여 명 정도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타이어 원재료인 고무 가격이 지난해 9월 이후 50% 가까이 올라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증권가는 이 회사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도 지난달 조직 개편을 통해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하는 조직을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고,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달 10개 핵심 계열사 대표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권오갑 회장 주재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공급망 위기 국내 산업계에 직격탄

각종 악재가 겹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은 이미 국내 기업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국내 수출 기업 1094사 중 85.5%가 공급망 위기로 인해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가장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은 물류난(35.6%·복수응답)이었고, 원자재 가격 상승(27.8%), 특정지역 봉쇄(16.9%)가 뒤를 이었다. 지난달 국내 완성차 업계의 판매량도 부품난 장기화로 인해 전년 동기 보다 6.6% 감소했다.

전 세계를 덮치고 있는 물가 상승과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움직임으로 인해 소비심리도 위축되고 있어 기업들의 위기감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비싼 돈을 주고 어렵게 원자재를 구해 물건을 만들었는데 판매가 안 되면 기업의 손해는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면서 “기업들은 코로나 사태 초기 만큼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