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현대차그룹에서 자율주행차·UAM(도심항공교통) 같은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를 개발하는 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 본부는 지난 3월 경기 판교의 신축 건물에 새 사무실을 열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서 근무하던 인력 중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기획자 등을 중심으로 150여 명이 이사를 했다.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IT 회사 분위기가 나도록 하라’는 최고경영진 지시에 따라 스타트업처럼 스낵바와 휴식공간도 마련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도 이런 분위기의 사무실이 두 곳 있다. 자율주행 인공지능 연구조직 에어스컴퍼니와 경기도 화성 남양연구소에서 분가한 인포테인먼트(내비게이션·동영상 등 차내 편의사양) 개발 조직이다.

서울 양재동 본사와 차량연구 본진(本陣)인 남양연구소를 나와 판교와 서울 삼성동에 각각 포진한 세 조직의 공통점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조직이라는 점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른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가 IT 개발자를 독식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유치하려면 근무환경과 접근성이 좋은 강남·판교 일대에 오피스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자동차 회사 아닌 IT회사처럼” SW 모시는 현대차

현대차가 ‘IT 개발자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월 50여 세부 분야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 경력직 모집공고를 냈고, 현재도 자율주행과 AI(인공지능) 직군 개발자를 뽑고 있다. 소프트웨어 인재 수백명을 모으겠다는 것이다. 앞서 작년 말 현대차 최고경영진은 “미래차 시대를 선도할 인재를 데려올 수 있도록 그에 걸맞은 보상과 조직 운영을 갖추라”고 지시했고, 현대차는 이에 따라 기존 직원보다 훨씬 높은 개발자 몸값을 맞추기 위한 별도 연봉 체제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차 시대에는 복잡한 기계부품이 아니라 자율주행·AI·차량무선통신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현대차가 체질을 바꾸겠다며 전에 없던 인재들을 모으기 위해 뛰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 별도 연봉체계에 더 많은 연봉, 재택 근무, 200만원대 허먼 밀러 의자까지… 사무실도 삼성동·판교에 별도로

삼성동의 AI 연구조직 에어스컴퍼니는 ‘현대차 같지 않은’ 개발자 조직이다. 네이버 출신 AI 전문가 김정희 전무가 이끌고, 네이버 출신 AI 개발자들이 주축이다. 재작년 독립 운영을 보장받는 사내독립기업으로 승격했다. 임금 구조도 기존 현대차 임금 구조와 다르다. 네이버를 비롯한 IT 업계에서 받던 연봉과 복지 수준을 제시하면서 공격적으로 AI 전문가를 뽑고 있다. 이곳 개발자들에겐 요즘 IT 업계에 ‘의자 복지’ 바람을 일으킨 200만원대 ‘허먼 밀러’ 의자도 지급된다. 네이버·SK하이닉스 등 대표 테크기업들이 복지 차원에서 제공해 화제가 됐던 사무용 고급 의자다.

개발자 조직은 근무 형태도 기존 현대차 조직보다 훨씬 자유롭다. 강남·판교 현대차 개발자 조직들은 지난해 하반기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100% 재택 근무를 했다. 올해도 50% 이상 재택 근무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재택·유연 근무가 활성화된 IT 업계 트렌드가 기준이 된다. 차량소프트웨어 개발을 총괄하는 송창현 사장(TaaS본부장·네이버 CTO 출신), 작년 12월 영입된 진은숙 부사장(NHN CTO 출신) 등 IT 업계 출신 인사들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 기존 자동차 연구원들은 부글부글 ”저쪽은 삼성맨, 우린 남양맨이냐”

앞으로 과제는 새롭게 합류한 IT 개발자와 남양연구소에 기반을 둔 기존 연구원들의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최근 현대차로 이직한 한 개발자는 “IT 개발자 수는 늘었지만, 자동차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기존 연구조직과 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자동차 회사는 IT 개발자들에게 매력적인 직장이 아니다보니까 일부 직군은 지원자가 거의 없어 면접이 미뤄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남양연구소의 일부 연구원은 출퇴근 여건이 좋은 삼성동에서 근무하는 개발자들을 ‘삼성맨’으로, 남양읍에 근무하는 자신들을 ‘남양맨’으로 지칭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한다. 한 연구원은 익명 게시판에 “노조는 생산직 중심이기 때문에 연구직을 챙겨주지 않고, 회사에서는 우리를 도태될 직군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