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투자하는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최신형 원전 1기의 발전 용량과 맞먹는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를 짓는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의 4배 규모로 생산 설비가 들어서는 용인 클러스터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약 1500㎿(메가와트) 규모 LNG 발전소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이천, 청주와 반도체 생산 규모를 따져보면 용인에는 1500㎿ 이상 발전 설비가 필요하다”며 “이달 반도체 클러스터가 착공에 들어가면 발전소 건설 논의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용인 클러스터가 단독 공장이 아닌 산업단지라는 특성상 별도 사업자가 발전소를 운영하며 전기를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측은 “한전에서 구입하는 전기는 신안성변전소로부터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조 대기업이 잇따라 ‘공장 옆 발전소’ 건설에 나서고 있다.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장기적으로 비용도 줄이겠다는 게 이유다.
◇발전소 짓는 대기업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0㎿급 이상 자가(自家) 중·대형 발전소는 포스코·현대제철 등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를 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제철소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이젠 반도체·자동차·정유사 업종 가릴 것 없이 전력을 많이 쓰는 제조업 전체로 확산하며 ‘뉴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다.
지난해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LNG 발전소가 운전에 들어간 데 이어 올해 말과 2024년에는 SK하이닉스가 이천과 청주에서 585㎿급 발전기를 가동하기 시작한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오일뱅크는 오는 2025년 준공을 목표로 울산과 서산에서 LNG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이 스스로 발전소 건설에 나서는 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장 큰 이유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24시간 가동하는 반도체 공장은 잠깐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겨도 생산 중이던 제품을 폐기해야 할 정도로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18년과 2019년 잇따라 경기 평택과 화성 공장이 정전 피해를 겪으며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매년 전력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여파로 수년 내 발전 설비용량 확대가 쉽지 않은 것도 기업이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이유로 꼽힌다. 신규 공장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선 대규모 전력 설비가 필수인데, 윤석열 정부에서 원전 설비 용량은 450㎿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공장 한 곳에 공급할 전력도 되지 않는 규모다. 여기에 한전 적자가 누적되며 송·배전망 관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수도권이나 울산과 같이 대규모 전기 수요가 많은 곳은 추가로 송·배전망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며 “기업들로서는 공장 내에 발전소를 지어 정전 위험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RE100 역행 지적도…기업으로선 현실적인 선택
그동안 눌러왔던 전기요금 인상이 예상되는 현실에서 전력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도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추세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장기 계약을 맺고 LNG를 안정적으로 도입해 발전소를 돌리는 게 길게 보면 이익이라는 것이다.
일부에선 기업들이 화석연료인 LNG 발전소를 짓는 게 ‘재생에너지 100%’를 지향하는 ‘RE100′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2050년까지 RE100을 추진하는 중간 단계로 LNG 발전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대규모 발전소 건설 지연, 오락가락하는 신재생 확대 등으로 앞으로 전력 공급이 과거처럼 원활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기업들로서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