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세계 각국의 무역 성적표는 천연자원이 갈랐다. 자원 부국들은 코로나 이후 공급망 붕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원자재 가격 폭등 수혜를 고스란히 누렸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캐나다·호주·브라질 등 자원 부국은 지난해보다 무역흑자가 크게 늘었다. 반면 우리나라·일본 등 원자재를 들여와 가공·수출하는 제조 강국들은 적자로 돌아섰다. 독일과 대만도 무역 흑자는 유지했지만, 규모는 축소됐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탈세계화 흐름 속에 자원 부국들이 자원 무기화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원이 곧 부(富)… 무역수지, 자원부국 웃고 기술 공업국 울어

19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올 1~2월 무역흑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7% 급증한 1159억사우디리얄(약 310억달러)을 기록했다. 1년 전 배럴당 50~60달러(두바이유)에 머물던 국제 유가는 올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란 핵협상 지연 등 각종 지정학적 요인이 겹치며 배럴당 100달러를 오르내리며 수출액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세계 6위 천연가스 수출국인 캐나다는 2~3월 수출이 역대 최고를 경신하며 1분기 무역흑자가 10배 이상 늘었다. 석탄·광물·팜유 등 동남아시아의 원자재 수출 대국인 인도네시아는 1~4월 무역흑자가 지난해 두배 가까이 급증했다. 유연탄·철광석 등의 자원이 많은 호주(1~3월)를 비롯해 남미의 브라질과 칠레(1~4월)도 올해 무역흑자가 10% 이상 늘었다. 제조업 강국이면서 석유·가스 등 에너지 자원도 풍부한 베트남 역시 두 배로 늘었다.

반면 기술력을 바탕으로 원자재를 수입·가공해 제품으로 수출하는 제조업 중심 국가들은 원자재 급등의 직격탄을 맞았다. 에너지를 대부분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올 들어 5월 10일까지 99억달러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일본도 1분기 무역적자가 3조2910억엔(256억달러)에 달했다. 일본은 이날 발표한 4월 수출입 실적도 8392억엔 적자를 나타내며 9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3대 에너지원 수입 비율 역대 최고… 가격 신호 필요성 대두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9일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0일까지 원유와 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액은 640억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의 1.9배로 늘었다. 3대 에너지 수입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4.9%로 관세청이 품목 단위 통계를 집계한 2016년 이후 가장 높다. 에너지 수입 비율은 2019년 22.7%로 상승했지만 코로나로 에너지 수요가 급감한 2020년과 지난해엔 20% 아래에 머물렀다.

급격한 탈원전·탈탄소 정책이 무역적자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재생에너지 발전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원전은 줄이고 비싼 가스발전을 늘리면서 에너지 수입이 급증했고, 그만큼 무역수지에도 타격을 줬다”고 말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산업계와 가정 모두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봉 숭실대 교수는 “우리 수출·수입 구조에서 에너지 수입의 비율은 지나치게 높다”며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할 땐 소비를 줄일 수 있도록 요금을 올려 가격 신호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등 에너지 소비가격이 너무 낮기 때문에 올 들어 국제 유가가 급등했는데도 원유 수입 물량이 작년보다 10% 이상 늘었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국면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다”며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무역적자가 국가 신인도 하락과 외환위기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