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보름도 지나지 않아 전격적으로 이뤄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은 70년 역사의 양국 동맹이 군사·안보를 넘어 기술·공급망 동맹으로 확대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과거 6·25와 베트남전 파병으로 맺은 혈맹 관계가 반도체·배터리·원전(原電) 등 미래 핵심 산업에서의 강력한 동맹 관계 구축으로 확산한다는 것이다. 미·중 갈등 속에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으로 줄타기를 하던 한국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 선언과 함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굳건해지는 반도체 동맹… 배터리·원전까지 밀착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0일 윤 대통령과 함께 방한 첫 행선지로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아 ‘3나노 웨이퍼(반도체 원료인 둥근 원판)’에 사인을 했다. 3나노는 삼성이 올 상반기 세계 최초로 양산을 앞두고 있는 최첨단 기술이다. 핵심 ‘안보 물자’로 부상한 반도체 확보에 미국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 분야에선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반도체 생산은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 TSMC에 의존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생산의 75%가 동아시아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줄곧 위기 의식을 표출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미국 내 생산 공장 투자 확대’ ‘미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우선 공급’ 등을 추진하고,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강자인 일본을 포함해 한·미·일·대만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반도체 4각 동맹’ 구축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이 중국 업체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도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자동차 업계 빅3 중 GM은 LG엔솔, 포드는 SK온, 크라이슬러를 모체로 한 스텔란티스는 삼성SDI와 합작해 미국에서 배터리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전기차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미국 완성차 업체로서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경험과 생산 능력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며 “우리 기업이 거대한 북미 시장을 선점할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원전에서도 양국 협력이 강화된다. 지난해 가을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에너지 위기에 이어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가운데 다시 주목받는 원전 시장에서 함께 수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용훈 KAIST 교수는 “한국 기업은 원전 건설의 경제성에 있어서 세계 최고”라면서 “폴란드와 같이 미국이 국가 간 협정을 통해 추진하는 원전 사업에 우리가 참여하는 식으로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변수… 정부 지원 등 필요
문제는 중국 변수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14.9%와 11.9%로 2위였지만, 중국은 각각 25.3%, 22.5%로 1위였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도 바이두, 텐센트 같은 대형 IT(정보기술)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스마트폰, 노트북, 전기차 생산 공장 등 엄청난 반도체 수요가 있다”며 “한쪽에만 줄을 서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 안보가 중요시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대응은 이어질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지난 정부에서처럼 애매하게 줄타기를 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미국과 동맹을 맺은 한국의 기업들엔 중국 내 첨단 장비 도입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중국 정부에도 한·미 반도체 동맹이 중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실장은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중국이 미국과 EU에서 차지하던 시장을 갖고 올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