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벼랑 끝에 몰렸던 항공사들이 최근 국제선 운항을 잇따라 재개하는 동시에 탄소배출량 감축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글로벌 산업계에 탄소중립 바람이 불면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으로 지목됐던 항공업계도 환경 규제를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제 사회의 탄소배출 규제는 계속 강화되고 있는 추세”라며 “코로나 시기에는 국제선 마비로 인해 탄소배출량이 적었지만 향후 국제선이 정상 운항할 경우 규제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리 탄소 절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형기 도입하고, 브레이크도 교체
대한항공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신형 항공기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2019년 대한항공은 국내 항공사 최초로 미국 보잉의 신형 여객기 30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B787-9와 B787-10을 각각 10대씩 구입하고, 추가로 B787-10 10대를 리스하는 방식이다. 리스 비용을 포함해 11조5000억원 규모다. B787-10은 구형 항공기 대비 연료 효율성이 25%, B787-9는 20% 개선된 제품이다. 같은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적은 연료를 쓰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다. 현재 B787-9 10대 도입을 완료했고 B787-10 20대도 순차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대한항공은 지난 2월부터는 인천~파리 노선에 국내 최초로 동·식물성 기름, 해조류, 도시 폐기물 가스와 같은 친환경 원료로 만든 항공유를 쓰고 있다. 기존 화석 연료 대비 가격은 2~5배 비싸지만 탄소배출량은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도 신형 기종인 에어버스의 A350과 A321네오를 도입하고 있다. 현재 A350 13대, A321네오 5대를 운영 중인 아시아나항공은 향후 A350을 30대까지, A321네오를 25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A350 항공기는 동급 기종 대비 연료 효율이 25% 높고, 탄소배출량은 25% 적다.
LCC(저비용항공사)업계도 탄소 배출에 적극적이다. 제주항공은 항공기 브레이크를 기존 스틸 재질에서 카본 브레이크로 교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항공기 1대당 무게 320kg이 줄어 김포~제주 노선 편도 1회를 운항할 때 이산화탄소 36.4kg을 감축할 수 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카본 브레이크로 교체한 항공기 21대가 505t의 탄소배출량을 줄였다.
◇항공업계,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항공사들이 이처럼 탄소배출량 줄이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세계적인 규제 강화 움직임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에도 지난해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50년까지 항공사들의 탄소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도 지난해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수준으로 동결하고 이를 초과하는 항공사에 대해서는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를 시범 운영(2027년부터 의무)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5년부터 EU내에서 이륙하는 모든 항공기에 친환경원료로 만든 항공 연료를 의무적으로 혼합해 사용하게 할 예정이다.
유럽환경청(EEA)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기준 승객 1명이 비행기로 1km를 이동할 때 이산화탄소 285g을 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거리를 기차로 이동했을 때(14g)보다 20배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것이다. 환경 보호에 경각심을 가진 일부 소비자들은 비행기를 적게 타고 여행하는 법이나 최신 기종 항공기를 골라타야 하는 이유와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한 항공사 임원은 “코로나 사태가 일단락되면 해외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데 이에 따라 탄소배출량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면서 “항공사들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실적을 빠르게 회복하면서도 탄소배출량까지 줄여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