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처음 찾은 곳은 정부청사나, 대사관, 군사 기지가 아니었다. 21세기의 진정한 전쟁터를 대표하는 널찍한 반도체 공장이었다”.
미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의 첫 행선지로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택한 것을 이렇게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마지막 날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단독 회동을 가졌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 첫 일정으로 특정 기업의 공장을 찾고, 기업 회장과 단독 회동을 갖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반도체·전기차 등 전략 물자 공급 협력을 통해 미·중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로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의 승리를 겨냥하는 대내외적 포석을 겸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우리 재계는 “한국 기업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졌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시작은 이재용, 마지막은 정의선... 정상회담 만찬에서도 기업인이 상당수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평택 반도체 공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를 맞아줘 감사하다. 이 행사는 이번 방한의 경사로운 시작이자 한·미가 만들어갈 협력과 혁신의 미래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이 미국에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해 3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에 감사의 뜻을 밝히며 “삼성처럼 기술과 혁신 발전을 이끄는 기업들이 한·미 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고위 인사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는 미국 투자를 더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겠지만, 세계 최고 권력자가 최신 3나노 공정이 적용된 반도체 공장에서 엄지를 들어올리는 모습이 전 세계에 주요 뉴스로 보도된 것은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기간 매일 우리 기업인을 만났다. 22일 정상회담 만찬도 50명의 우리 측 참석자 중 상당수가 재계 인사였다. 5대 그룹 총수, 6대 경제 단체장뿐 아니라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강한승 쿠팡 사장, 류진 풍산 회장 등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국 산업계의 높은 위상을 보여준 것”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기업을 이처럼 챙기는 것은 최근 우리 기업이 밝힌 대미 투자가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을 중심으로 54조원에 이를 만큼 크기 때문이다. 2025년까지 총 105억달러(약 13조3000억원) 투자를 발표한 현대차그룹에 앞서, 삼성전자는 작년 연말 170억달러(약 21조6000억원)의 신규 파운드리 공장 건설 계획을 밝혔다. 우리 기업 한 곳의 투자로는 최대 규모 미국 투자로, 올 상반기 착공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도 2025년까지 17조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이관섭 무역협회 부회장은 “기업 우대를 행동으로 보여준 바이든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기업인들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국민의 대우나 인식이 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한·미 정상이 경제·기술 동맹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은 우리 산업계의 높은 위상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통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차를 감안해 미국 내 홍보 효과가 가장 큰 20일 저녁 삼성전자를 찾았고 중간선거 격전지 조지아주에 현대차의 투자 약속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