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현대차, 롯데, 한화가 24일 일제히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 그룹의 투자 규모는 삼성이 5년간 360조원, 현대차가 4년간 63조원, 롯데는 5년간 37조원, 한화가 5년간 20조원으로 ‘역대급 투자 보따리’를 풀겠다는 것이다. SK와 LG를 비롯한 다른 대기업들도 조만간 이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주도 성장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 출범에 발맞춰, 재계가 국내에서 투자와 고용을 더 적극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삼성, 매년 90조 투자 ‘반도체 초강대국’, ‘바이오에서 제2의 반도체 신화’

삼성그룹은 이날 “앞으로 5년간 총 450조원을 투자하고 이 가운데 80%인 360조원을 연구개발(R&D), 시설 투자 등을 통해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년간 국내 투자 금액(250조원)보다 100조원 이상 늘린 것이다. 지난주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을 동반 방문한 지 나흘 만에 나온 대규모 투자 발표로, 한미 ‘반도체 동맹’ 강화와 현 정부의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에 최대한 부응하겠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핵심 투자 분야는 시스템반도체와 바이오, AI·차세대 이동통신이다. 우선 삼성은 팹리스(설계)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투자를 집중해 매출 70%가 메모리반도체에 편중된 반도체 사업 구조를 개선해나가기로 했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2011년 설립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국내 시총 4위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5·6 공장 건설을 포함한 공격적 투자와 생산 기술 역량 고도화로 바이오 위탁 개발 생산 시장 ‘세계 1위’를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또 반도체와 바이오, AI·차세대 이동통신 등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5년간 8만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향후 3년간 4만명을 고용(연간 1만3000명)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비교하면 9개월 만에 연간 1만6000명으로 채용 규모를 확대한 것이다.

◇현대차, 국내 63조 투자… 미래 사업 허브로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3사가 2025년까지 국내에 6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들 3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14조원으로, 해마다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을 국내 투자에 쏟아붓는 것이다.

먼저 전기차·수소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같은 친환경차에서 기술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16조2000억원을 투입한다. 경기도 화성에 맞춤형 밴 등 특수목적용 전기차 전용 공장을 신설하고, 기존 공장에 전기차 전용 라인을 증설하는 등 친환경차 생산 설비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로보틱스·항공모빌리티·자율주행·소프트웨어 같은 신사업에는 8조9000억원을 투자한다. 차세대 웨어러블·서비스 로봇을 개발해 사업화에 나서고, 김포공항과 용산·잠실 등을 오가는 소형 항공기 서비스 사업도 추진한다. 또 내연기관차 상품성·서비스 강화를 위해 38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를 국내에 집중함으로써 ‘그룹 미래 사업 허브’로서 한국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 “국내에 37조원 집중 투자”

롯데그룹도 앞으로 5년 동안 3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롯데는 최근 바이오 의약품 사업 진출을 위해 미국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 인수에 2000억원을 들인 바 있다. 여기에 이어 1조원을 들여 국내 공장 신설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전기차 배터리 충전 사업을 위한 시설 투자도 확대한다. 충전기 생산량을 연간 1만대 이상 규모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롯데렌탈도 8조원을 들여 전기차 24만대를 도입한다.

유통 사업 부문에서는 8조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서울 상암동과 인천 송도 같은 곳에 고용 유발 효과가 높은 대규모 복합몰 개발을 추진하고, 롯데백화점 본점·잠실점 같은 핵심 지점을 리뉴얼한다는 계획이다. 코로나로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관광 산업을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호텔과 면세점 시설에도 2조3000억원을 투자한다. 대체육, 건강기능식품 같은 미래 먹거리와 신제품 개발에도 2조1000억원가량을 쏟을 계획이다.

◇한화, 에너지·방산·우주항공에 역량 집중

앞으로 5년간 총 37조6000억원을 투자하는 한화그룹은 국내에서만 2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 5년간 한화그룹이 국내외를 통틀어 투자한 22조6000억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한화그룹은 특히 태양광, 풍력 등 에너지 분야에 4조2000억원을 투자한다. 이를 통해 태양광 연구 개발을 강화하고, 최신 생산 시설을 구축해 국내 공장을 고효율의 태양광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글로벌 핵심 기지’로 성장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방산·우주항공 분야에는 2조6000억원을 투자해 K-9 자주포 해외 시장 개척 등 K-방산 글로벌화를 더욱 가속화하기로 했다. 한화그룹은 또 기계·항공·방산, 화학·에너지, 건설·서비스, 금융 등 전 사업 부문에 걸쳐 연평균 4000여 명 안팎의 신규 채용을 진행하기로 했다.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국내 주요 그룹이 같은 날 일제히 국내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한 것은 바이든 방한으로 대미(對美) 투자만 강조되고, 국내 투자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행동이라는 지적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