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7일부터 18일까지 네덜란드 등 유럽으로 해외 경영 행보를 다시 시작한다.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은 지난해 12월 중동 출장 이후 6개월 만이다.
오는 7일 출국하는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로 날아가 ASML 최고경영진을 만나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ASML은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곳이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EUV 장비 품귀현상이 벌어지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해당 장비 수급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보통 이 부회장의 해외출장 동선은 삼성 최고경영진내에서도 극비로 간주되는데, 이렇게 사전에 알려진 것은 매주 한차례씩 출석하고 있는 삼성물산 합병 의혹 재판때문이다.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혐의 공판에서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이달 7∼18일 네덜란드 출장으로 재판 출석이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면서 검찰 의견을 물었다. 검찰이 “이견이 없다”고 하자 재판부는 “경영상 필요에 의한 것이고 검찰도 동의했다”면서 출장 기간에 예정된 두 차례의 재판은 이 부회장이 불출석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오는 10일과 16일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해외출장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이 부회장은 2020년 10월에도 EUV 장비 확보를 위해 직접 ASML 본사를 찾았다. 이 부회장은 당시 페터르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마르틴 판덴브링크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EUV 장비는 초미세 반도체 회로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설비로, 사실상 ASML만 생산 기술을 갖춰 독점 판매하고 있다. 이 때문에 ASML은 ‘수퍼을’이라고도 불린다. 업계에 따르면 1년에 1대당 2000억원에 달하는 EUV 장비의 생산 가능 수량은 1년에 40~50대 뿐이어서 반도체 기업들의 확보전이 치열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기업뿐 아니라 TSMC, 인텔 등도 장비 확보에 공을 들인다. 삼성전자는 ASML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2012년 5억300만 유로(약 6770억원)를 투자해 지분 3%를 확보했다. 이후 2018년 보유 지분의 절반을 팔아 현재 지분 1.5%를 확보하고 있다.
이번 유럽 방문에서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던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과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가 나올 것인지도 관심사다. 유럽에는 인피니언과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NXP 등 대형 아날로그 반도체 업체가 많다. 업계에서는 124조원 규모 현금을 들고 있는 삼성전자가 이번 이 부회장의 유럽 출장에서 그동안 논의돼오던 M&A를 결론 내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