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운송에 대한 충분한 값을 치르는데 기사들의 휴대폰 사용료, 세무사 비용, 세차비까지 내줘야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됩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 총파업 이틀째인 8일, 한 시멘트 업체 관계자는 “2020년 안전운임제 도입 후 유류비 인상분을 빼도 운송비 부담이 15% 넘게 늘었다”며 “안전운임 산정 때 기업이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 과도하게 포함된다”고 말했다.
화물연대는 올해 말로 끝나는 안전운임제를 계속 실시하고, 적용 대상을 전 화물차로 확대해야 한다며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화물 운송을 맡기는 화주(貨主) 측은 “현행 제도는 개인사업자인 화물차 기사에게 과도한 비용을 지급하는 구조”라며 예정대로 올해 말 종료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계에선 화물연대 주장대로 안전운임제가 확대 시행될 경우 산업 전 분야에서 물류비가 폭등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운전기사 세무사 비용까지 내줘야 하나”
안전운임제는 현재 시멘트 운반용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와 수출입용 컨테이너 차량에만 적용된다. 매년 열리는 국토교통부 안전운임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거리와 구간별 운임이 정해진다. 화물차 기사들에게 최소한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줌으로써 과속·과적·과로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2018년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3년(2020~2022년)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문제는 안전운임제가 적용된 이후 화물 운임비가 급격히 올랐다는 것이다. 국토부 고시에 따르면, 26t 기준 시멘트 운송 화물차가 왕복 200km를 운행할 때 운임은 올해 25만100원으로 작년(20만381원)보다 24.8%나 올랐다. 한국무역협회 화주협의회 측은 “2020년 안전운임제 시행 후에 품목별로 30~40% 정도 운임이 인상된 것으로 조사됐다”며 “중복 할증이 붙는 경우 70% 이상 물류비가 올라 국내 생산을 중단하고 해외 생산을 검토하는 기업도 있다”고 밝혔다.
화주들은 안전운임제 도입으로 이전에는 지출하지 않던 비용을 추가 부담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안전운임은 화물차 기사가 평균적으로 쓰는 비용을 추정해 산정하는데, 화주 측이 동의하기 어려운 항목이 대거 추가됐다는 것이다. 차량 기사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나 단체·협회비, 차량 구매에 따른 이자, 주차비, 휴대폰 통신비 등이다. 시멘트 업계는 이런 식으로 추가된 비용이 한 사람당 매달 200만원이 훌쩍 넘는다고 주장한다. 한 수출 업체 관계자는 “화물차 기사는 자기 차로 돈을 버는 개인사업자인데 자기들이 세무사한테 상담받는 비용까지 기업에 청구하는 것은 과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최근 경윳값 급등으로 기사들의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화물연대 측 주장에 대해서도 화주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안전운임위원회가 3개월마다 유가를 조사해 변동 금액을 운임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일부 화주는 오히려 “안전운임위원회가 연료비를 과도하게 책정한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시멘트 운송 트레일러의 실제 연비가 1L당 2.7km쯤 되는데 안전운임위원회는 1.6km 정도로 계산한다”고 말했다.
◇전 산업 물류비 치솟을 가능성
안전운임제 전면 확대를 요구하는 화물연대 파업은 비조합원 화물차 기사들에게도 매력적인 부분이다. 이 때문에 “화물연대가 이번 파업을 통해 조합원 수를 대폭 늘리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레미콘 운송기사는 “화물연대의 강경한 투쟁 방식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화물연대 가입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국내 화물차 41만대 가운데 6% 정도에만 적용되는 안전운임제가 전체 화물차로 확대될 경우 대형 물류뿐만 아니라 소형 트럭의 운임까지 일괄 인상돼 중소기업은 물론 소상공인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해상·항공 운임도 크게 오른 상황에서 안전운임제가 확대 적용되면 전체 제조업과 유통 분야까지 물류비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