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산 공정은 크게 두 가지다. 실리콘으로 웨이퍼(기판)를 만들어 회로를 새기는 전(前) 공정과 이렇게 만들어진 웨이퍼를 다이아몬드 칼로 절단해 칩 단위로 분리하는 후(後)공정이다. 후공정까지 마친 개별 반도체 칩을 검사하는 장비는 국산화가 50% 정도 이뤄졌지만, 웨이퍼 단계의 전 공정 검사 장비는 미국의 KLA와 AMAT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반도체 광학검사장비 회사 넥스틴은 미국이 독점해 온 전 공정 검사장비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아직 시장 점유율은 3% 정도로 미미하지만, 구매처 다변화를 모색하는 글로벌 반도체 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넥스틴 본사에서 만난 박태훈(56) 대표는 “미국 독점 시장에 균열을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대표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삼성에서 병역 특례로 있으면서 반도체를 처음 접했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 초기였던 당시 화학 전공자를 중용하라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미국 KLA에서 7년간 일한 박 대표는 2002년 반도체 검사 장비 시장에 뛰어든 이스라엘 신생 업체 네게브텍으로 옮겼다. 네게브텍이 자금난으로 파산하자 2012년 10월 넥스틴을 세웠다. 그는 “수년간 연구해오던 기술을 포기하기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미국이 독점하는 반도체 장비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 산업은행·한국투자파트너스 등 국내 벤처캐피털 투자도 받았다. 부설 연구소까지 세워 연구·개발 끝에 장비 개발에 성공했다.
반도체 검사 장비는 첩보 위성 기술이 원류다. 반도체 칩 1000개 정도가 배치된 웨이퍼를 위성처럼 고해상도로 촬영해 반도체 회로의 미세한 흠이나 불량을 잡아 불량률을 자동으로 보여준다. 100nm(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크기의 결함을 잡아내는 검사 장비는 시간당 웨이퍼 40장을, 30nm 크기의 미세 결함을 잡아내는 검사 장비는 시간당 웨이퍼 10장을 검사할 수 있다.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하는 웨이퍼를 250장당 1장 꼴로 샘플을 뽑아 검사한다.
넥스틴의 또다른 장점은 가성비다. 대당 100억~200억원에 이르는 검사 장비 가격을 크게 내렸다. 미국 기업들이 누리는 독점 이윤을 걷어낸 것이다. 넥스틴 장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은 물론, SMIC·JHICC·YMTC 등 중국 반도체 업체들도 주요 고객사로 주문량을 늘리고 있다. 박 대표는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이지만 일단 제품 성능이 입증되자 많은 반도체 기업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넥스틴은 2020년 10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박 대표는 “천천히 상장하면 기업가치를 더 높게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주변 반대가 심했지만, 우리 회사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야 다른 기업에도 투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상장을 추진했다”고 했다. 넥스틴은 지난해 매출 571억원, 영업이익 22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38.5%에 달한다. 박 대표는 올해 매출 1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