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전 전남 영암군 호텔현대에서 ‘전남 조선업 활성화를 위한 인력 수급 대책 및 지원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조선업 인력난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전남도·현대삼호중공업·대한조선·대불산단 15개 협력업체·목포대 관계자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 지역에선 그동안 수차례 인력난 해결 회의·토론회가 열렸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토론회는 이날이 처음이라고 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조선 협력 업체 관계자들은 “한국 조선 산업이 모처럼 찾아온 수주 붐을 인력난 때문에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인철 대한조선 협력사협의회장은 “중국에 비해 납기를 잘 맞추는 것이 우리 조선업의 큰 장점인데 일손 부족으로 납기가 지연돼 정말 공포스러운 상황”이라고 했고, 고창회 대불산단경영자협의회 회장은 “조선 수주 물량에 비해 생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어렵게 찾아온 조선업 회복의 좋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조선업계 근로자는 지난해 9만2000여 명으로 불과 8년 전보다 54% 넘게 감소했다. 업계에 따르면, 여기엔 취업 비자를 받은 외국인이 포함되지만 이들은 매년 수백명 수준이어서 사라진 11만명 모두가 사실상 한국인 인력인 셈이다. 업체들로선 불법체류자라도 채용해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있다. 대불산단의 경우도 조선 협력업체 근로자의 68%가 외국인이고, 그 중 60%가 불법체류자 신분이라는 게 조선업계 설명이다.
◇업체 간 인력 쟁탈전까지 벌여
외국인 인력조차 귀하다보니 대불산단 조선업체들 간에는 매일 외국인 근로자 쟁탈전이 벌어진다. 한 조선 협력업체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외국인 용접 근로자 일당이 12만원 선이었는데 현재는 15만~16만원까지 올랐다”면서도 “일손 하나가 아쉬운 업체들은 돈을 더 주더라도 이들 인력을 데려다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 조선 협력업체 사장들은 매일 저녁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일일이 문자를 돌리는 일이 일상이 됐다. 다른 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일당에 웃돈을 얹어줄 테니 우리 회사로 나오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국적이 같은 외국인 근로자들끼리 같은 회사로 일하러 가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각 국적 근로자 중 총책 역할을 하고 있는 근로자를 설득하는 데 특히 공을 들인다.
외국인 근로자 품귀 현상이 발생하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업체를 상대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 협력업체 전무는 “몽골 출신 근로자들이 단체로 파업을 선언하면서 일당을 25만원으로 인상하고 몽골 음식으로 파티를 열어달라고 한 적도 있다”면서 “어쩔 수 없이 수백만원을 내고 파티를 열어줬다”고 말했다.
◇원자재난 가중에 반짝 호황 끝날 것이라는 경고음도
조선업계의 악재는 인력난뿐이 아니다. 선박 건조 비용의 20%를 차지하는 후판(선박에 사용되는 두께 6㎜ 이상 철판)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조선업체들의 수익성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t당 10만원·40만원 오른 후판가는 올 상반기에도 10만원 오르면서 2020년 대비 2배 폭등한 상태다. 후판가 인상으로 인해 지난해 한국조선해양은 영업손실 1조3848억원을 기록했고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각각 1조7547억원, 1조3120억원 적자를 봤다. 조선 3사는 올 1분기에도 모두 수백억~수천억원대 적자를 냈다.
조선업의 반짝 호황이 조기에 끝날 것이라는 경고음도 곳곳에서 나온다. 산업연구원(KIET)은 지난달 말 발표한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조선업 수출이 전년 대비 20.2% 감소해 13대 주력 산업 중 유일하게 경기가 나쁠 것으로 전망했다. 증권사들도 실적 부진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주요 조선소들의 수주 잔액 증가세가 둔화되는 등 조선업 경기가 전반적으로 ‘다운사이클’에 접어들었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 악화도 이어질 것”이라며 “개별 선박의 건조 가격 상승세도 둔화되고 있어 4~5개월 뒤엔 하락세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 조선업체 임원은 “인력난과 수익성 악화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 바로 글로벌 점유율 1위인 한국 조선업의 냉혹한 현실”이라면서 “조선업 경쟁력 회복을 위해 정부·기업·학계·노동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특단의 대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