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 위기 이후 처음으로 상승률 6%대 고(高)물가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다음 달 전기 요금과 가스 요금이 동시에 인상돼 서민 가계의 물가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됐다. 그런데도 정부가 전기 요금 약관까지 바꾸면서 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5원 올린 것은 전기를 팔면 팔수록 쌓여가는 한전 적자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다다랐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전력공사 나주 본사./뉴스1

당초 예상된 3원을 넘어 인상폭을 전격적으로 5원까지 확대한 건 앞으로 전기 요금을 계속 올릴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이번 인상폭 자체로는 한국전력의 천문학적 적자 규모를 만회하기에는 크게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기 요금 인상은 없다”는 기조 아래 요금을 억눌렀던 지난 정부와 확실히 선을 그음으로써, 시장에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번 전기 요금 인상으로 국내 전력 소비자들은 4인 가구 기준으로 월 전기 요금 부담이 약 1535원 늘어난다. 앞서 2분기에 전기 요금은 kWh당 6.9원 올랐고, 10월에도 4.9원 더 오를 예정이다. 올해만 최소 16.8원(약 15.1%) 오르게 되는 셈인데 10월이 되면 가구당 부담은 지난 3월 말보다 월 5157원 늘게 된다. 1·2차 오일 쇼크가 닥쳤던 1970년대 이후 가장 큰 인상 폭이다.

세계 각국은 지난해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자 전기 요금을 잇따라 올렸다. 하지만 지난 정부는 임기 막판인 지난해 말에야 전기 요금 인상 시점을 대선 이후인 4월과 10월로 못 박아, 요금 인상 부담을 현 정부로 떠넘겼다. 그 같은 늑장 인상은 올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맞물리며 한전을 사상 최악의 경영 위기로 몰아넣었다. 한전은 1분기에만 7조8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6월까지 회사채 발행 규모는 15조5000억원까지 불어났다.

올해 한전의 적자 규모는 최대 3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전기 요금을 5원 올려도 적자를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 3~5월 유가와 천연가스, 석탄 가격을 반영한 연료비는 kWh당 80.2원으로 이번에 전기 요금을 33.6원 올려야 겨우 적자를 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전기 요금 인상으로 한전이 올해 줄일 수 있는 영업손실은 1조3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10월 예정된 전기 요금 인상에 더해 추가 인상 가능성도 제기된다. 성과급 반납, 부동산 매각 같은 자구책만으로는 지금의 적자를 해결하기 어려운 탓에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정승일 사장을 포함한 처·실장급 이상 400여 명이 성과급을 반납하기로 했지만, 규모는 수십억원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등 도심 요지에 있는 한전 지사도 대부분 주변 지역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변전소가 지하에 있어 매각은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