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경기 남양주 본사에서 만난 자코모 박경분 대표는 “36년간 소파를 만들어 팔면서 지겹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대를 이어 일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회사를 꼭 ‘100년 기업’으로 키워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올해부터 매년 7월 첫째 주가 ‘여성기업 주간’으로 지정된다. 여성 기업인이 국가 경제와 창업 생태계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경제 주체로 자리 잡으면서 여성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중소기업 약 688만곳 중 여성 중소기업은 약 277만곳으로 전체 중소기업의 40.2%를 차지한다. 본지는 각 산업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성 경제인들을 연쇄 인터뷰로 소개한다.>

“원래 소파 가죽에는 상처가 있어야 해요. 매끈하고 흠집 하나 없는 가죽은 그만큼 많이 갈아내고 약품 처리를 여러 번 했다는 건데, 그러면 가죽이 숨을 못 쉬어요.” 27일 오후 경기 남양주 자코모 본사에서 만난 박경분(67) 대표는 전시장 곳곳에 전시돼 있는 소파 150여 세트를 일일이 소개하며 자사 소파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각 소파에 얽힌 사연과 소재, 마감 방법까지 꼼꼼히 설명하던 박 대표는 “36년간 소파를 만들어 팔았지만 한번도 지겹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1986년 ‘재경가구’로 출발한 자코모는 올해 창립 36주년을 맞은 국내 1위 소파 기업이다. 창립 당시엔 유명 가구 업체에 소파를 납품하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의 사업을 하다가 2005년 자체 브랜드 자코모를 론칭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테리어 수요가 폭증하면서 지난해엔 연매출 1800억원을 달성했고, 올해는 매출 2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소파업계에 흔치 않은 여성 기업인인 박 대표는 “‘품질에선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는 핵심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 오늘날의 자코모를 있게 한 비결”이라고 했다.

◇“돼지 축사에서 시작해 화물차 끌며 전국 돌아”

“중학생 때 무작정 동대문에서 옷을 떼다가 형부가 운영하는 타월공장의 언니들을 대상으로 ‘완판’을 했었죠. 그때 결심했어요. 커서 꼭 사업가가 되겠다고.” 어릴 적부터 사업가의 꿈을 키웠던 그는 여상을 졸업한 뒤 서울 무교동의 한 무역회사에서 일하며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여성이 일을 하면 ‘남편이 얼마나 못났길래 여자가 밖으로 나돌아’라며 흉을 보던 때예요.” 하지만 그는 회사를 계속 다니겠다는 마음에 1979년 결혼식도 비밀로 했다.

악착같이 모은 돈에 대출을 더해 1986년 남양주에 380평짜리 돼지 축사를 산 게 자코모의 시작이다. “소파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뒤 교사로 일하던 남편을 소파 회사에 취직시켜 일을 배우게 했어요. 그동안 저는 축사를 개조해 소파 공장으로 만들었죠.” 남편이 영업을 하면 박 대표는 직접 화물 트럭을 끌고 전국을 돌며 소파를 배달했다.

사업 초기, 운이 따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과 근교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유명 가구 업체들에 소파를 납품하게 되면서 그해 한 해에만 소파 1만3000세트를 제작했다. 10년 뒤, 불운도 따랐다. 1998년 IMF 외환 위기 사태로 가구 업체들이 공장 및 납품업체를 모두 중국으로 이전한 것이다. 박 대표는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중국 청두에 공장을 세웠는데, 제품 품질이 떨어져 결국 손해만 보고 철수했다”고 했다.

◇“품질 버리면 망한다” 위기 견딘 비결은 오로지 품질

중국 사업을 접으면서 ‘품질을 포기하면 망한다’는 교훈을 얻은 박 대표는 자체 브랜드 개발을 결심하고 2000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국내 가구업체 최초로 디자인연구소를 세웠다. 또 현지에서 향긋한 송진 냄새가 나는 고급 본드, 200㎏ 곰이 앉아도 꺼지지 않는 이탈리아 최고급 밴드(소파 내장재)를 망설임 없이 수입했다. 박 대표는 “비싸고 좋은 원자재를 많이 쓰는 대신 중간 마진을 줄이기 위해 대리점을 내지 않고 직영점만 운영했다”며 “’딱 5만원만 남기자’는 마음으로 접근하니 좋은 원자재를 쓰고도 오히려 경쟁사보다 소파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2005년 출범한 자코모는 17년간 ‘고품질 소파’로 시장 장악력을 꾸준히 키워왔다.

자코모는 최근 2년간 ‘코로나 특수’를 입었다. 코로나로 재택 근무자가 늘면서 소파 매출도 덩달아 150%씩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 특수가 사라지면서 매출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묻자 박 대표는 “새로 짓는 수많은 아파트에 우리 소파가 들어가면 얼마나 멋지겠느냐”고 했다. 박 대표는 “국내 유명 드라마에 가구를 협찬한 것도 사업 확장의 기회가 됐다”고 했다. K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해외 수출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그는 “중국·일본에 이미 상표 등록을 마쳤고 다른 나라도 사업성을 파악하는 중”이라며 “이제는 세계적 소파 브랜드로 성장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박경분 자코모 대표

1986 경기 남양주에서 가구업체 창업

2000 이탈리아 밀라노에 한국 가구업계 최초로 디자인 연구소 설립

2005 자체 브랜드 ‘자코모’ 출시

2021 매출 1800억원. 금탑산업훈장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