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인천 남동구의 엠텍 본사에서 만난 백영순 대표는 “사업을 할 바엔 여성이라는 제약을 벗고 제대로 자립하고 싶었다”고 했다. 백 대표는 자동차 기능성 부품을 제조하는 엠텍을 세워 현대기아자동차, 르노, 포드, BMW 등 세계적 자동차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인천 남동공단의 자동차 부품 업체 엠텍은 엔진 제어와 연료필터·에어컨 필터용 부품을 만든다. 단품 가공부터 시작해 지금은 조립, 부품 개발까지 하는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작년 매출 180억원을 달성했고, 올해는 매출 3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29일 엠텍 본사에서 만난 백영순(60) 대표는 “13년 전 처음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다들 ‘화장품 회사나 반찬가게나 하라’고 했지만 지금 우리가 만드는 부품들은 현대차·기아, 르노·닛산·포드·BMW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 납품되고 있다”며 웃었다.

2009년 엠텍 창업 당시 백 대표는 1년여 간 골프웨어 전문점을 운영한 게 사업 경험의 전부였다. 직장 생활을 해본 적도 없었고, 대학 시절 전공도 사회복지학이었다. 그러다 골프동호회에서 중소 제조업체 대표가 하는 얘기를 듣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CNC(컴퓨터수치제어) 선반이라는 기계에 자재를 넣으면 부품이 알아서 척척 나오는데 그걸 받아 팔면 돈이 된다”는 말이었다. 백 대표는 “사업을 할 바엔 여성이라는 제약을 벗고 제대로 자립하고 싶었다”며 “예쁜 여자가 아닌 여장부로 살고 싶었다”고 했다.

대당 1억원 하던 CNC 선반 5대를 사 호기롭게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업계 경험이 전무한 ‘여사장’이 넘어야 할 벽은 높았다. 은행에 대출을 신청하면 번번이 “남편을 데려오라”고 했다. 백 대표는 “경험 많은 직원을 뽑으려 해도 내가 못 미더운지 채용이 쉽지 않았다”면서 “기술을 잘 몰라 직원들에게 끌려다닐 땐 ‘내가 대표인지 저 직원이 대표인지 모르겠다’는 자괴감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창업 후 6~7년간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대신 놀고 먹는 것을 모두 직원들과 함께 했다. 업계에서 수십 년간 일한 직원들 틈 속에서 뭐라도 주워듣고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여사장’에 대한 편견이 싫어 항상 바지를 입고 다녔고 거래처 담당자들과의 모임에선 술을 마시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또 항상 거래처를 직접 찾아다니며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동을 최소화해야 하는 CNC 선반 설비는 1층에 설치하는 게 상식이지만, 회사 설립 초기 2층에 공장을 꾸려 설비를 들여놓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국의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현지 거래처와 연락이 끊겨 수억원대 납품 대금을 못 받는 일도 겪었고 반도체 수급이 안 돼 일부 부품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백 대표는 “이렇게 비싼 수업료를 냈으니 앞으로 큰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2013년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했다. 부품을 단순 가공해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제품 개발을 결심한 것이다. 독일 말레 같은 글로벌 자동차 협력사들로부터 품질 인증을 받은 것도 연구개발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미래 차 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의 자동차 산업은 변화가 빠른 산업 중 하나입니다. 당분간은 내연차가 캐시카우 역할을 하겠지만, 친환경 분야인 전기차와 수소차용 신규 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며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