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건설 현장 노동자 죽으면 냉동시켜 납품업체 떠넘겨 범죄 은폐!’ ‘범죄 수괴 이재용’…..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삼성전자 서초사옥 주변에는 이런 내용의 플래카드가 20여 개 걸려 있었다. 삼성생명·화재·증권 등 금융 계열사가 입주한 서초사옥 앞뿐만 아니라 지하철역 사거리까지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겨냥한 현수막이 빼곡했다. 일부 플래카드에는 이름이 붉은색으로 인쇄돼 있었다. 한 삼성 임원은 “비즈니스 미팅차 방문한 해외 거래처 관계자들이 플래카드를 가리키며 ‘저게 뭐냐’고 물어볼 때마다 정말 당혹스럽다”며 “플래카드 내용을 설명해주면 허위 사실에 인신공격성 플래카드가 어떻게 글로벌 대기업 사옥 앞에 걸릴 수 있는지 의아해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사옥을 점령한 인격 살인 플래카드
같은 시각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역삼동 GS타워 주변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펼쳐졌다. LG트윈타워 앞에는 여행용 텐트 4개를 중심으로 ‘자국 노동자 죽어가는데 LG가 방관한다’ ‘LG가 애국 기업이라면 일본 산켄전기와의 거래를 당장 중단하라’ 등의 현수막 20여 장이 걸려 있었다. 경남의 한 전자부품 업체가 폐업하자 금속노조 경남지부 노조들이 이 회사의 모기업인 일본 산켄전기와 거래하고 있는 LG전자에 사태 해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옆에는 LG전자 자회사인 하이프라자 임단협을 LG전자가 나서서 해결하라는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 앞도 플래카드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SK텔레콤 자회사 SK브로드밴드가 인수한 회사 노조원들이 농성을 벌이며 “SK텔레콤이 직고용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잔뜩 내건 것이다. 역삼동 GS타워 앞에도 ‘GS칼텍스 허세홍 대표! 쪽팔리면 즉각 복직시켜라’라는 해고자의 플래카드 5장이 걸려있었다.
플래카드 공해는 사옥뿐만 아니다. 이날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집 앞에는 가로 3m, 세로 6m 천막 옆으로 ‘이재용 응답하라’ ‘삼성전자 공동교섭단 투쟁 83일 차’ 같은 문구가 걸렸고, 주변 리움 미술관으로 향하는 골목에도 ‘이재용 부회장이 결단하라’ 같은 현수막이 담벼락 곳곳에 붙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지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임금 교섭에 나서줄 것을 요구하며 이 같은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올 초에는 CJ대한통운 택배노조가 이재현 CJ 회장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현수막을 붙였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한남동 자택 앞도 한때 노조원들이 자주 찾는 현수막 공격 대상이었다.
이런 플래카드는 타깃이 된 당사자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시민에게도 불쾌감과 불편을 주고 있다. 삼성 사옥 인근에 사는 주부 박선영(43)씨는 “강남역을 지날 때마다 섬뜩한 플래카드 문구가 너무 불쾌하다”며 “애들과 함께 지나갈 때는 못 보도록 눈을 가린다”고 말했다.
◇속수무책 현수막 공해, 일각에서는 ‘맞불 집회’ 열기도
더 큰 문제는 현수막 공해가 도를 넘고 있지만, 현행 법·규정으로는 막을 수 없어 수년째 이 같은 문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시위용 현수막은 ‘집회·시위를 위한 도구’로 인정돼 경찰에 집회 신고한 장소에 게시할 수 있다. 개수 제한도 없다. 경찰 관계자는 “몇 명이라도 합법적으로 집회를 하면서 현수막을 게시하면, 강제로 철거할 수 없다”며 “대부분 집회 신고자가 한 달씩 미리 신고를 해놓고 계속 연장하다 보니 현수막이 1년 내내 걸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회사 측에서 맞불 집회를 열기도 한다. 실제 4일 오전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앞에선 회사 측의 ‘맞불 집회’가 열렸다. 노조원들과 퇴직자들이 플래카드로 회사 정문 앞을 점령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건전한 집회 문화 정착 촉구’ 집회를 열고, 플래카드 15개를 주변에 내걸었다.
장정우 경총 노사협력본부장은 “현수막이나 사옥 시위는 기업 총수를 겨냥해 외부에 소란을 일으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라며 “정부와 노동계가 목적뿐만 아니라 수단과 방법도 법과 원칙, 상식을 지키는 문화가 만들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