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20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열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R&D 로드맵 토론회'에서 인사말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가 20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R&D(연구·개발) 로드맵을 처음 공개했습니다. 1조4000억원을 투자해 운반·저장·부지·처분 분야에서 2060년까지 처분 용기 설계 및 제작 등 104개 요소 기술과 343개 세부 기술 개발을 완료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로드맵이 계획대로 달성될지는 불투명합니다. 2023년부터 37년간 이어지는 중장기 계획의 첫 단추인 특별법 제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법은 작년 11월 국회 소위에 회부됐지만 대선 일정과 하반기 원 구성 지연에 밀려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특별법이 없다 보니 산업부도 이날 R&D로드맵 보도자료 일정표에 구체적인 연도를 표기하는 대신 ‘영구처분(Y+37년)’과 같이 ‘특별법 시행 시점(Y)’에 따른 일정을 명기했습니다. 특별법 제정이 미뤄지면 전체 일정이 줄줄이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시급한 문제는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면 멀쩡한 원전을 가동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원전 내 수조에 보관하는 방폐물은 공간이 가득 차면 꺼내 부지 내 임시 저장 시설로 옮겨야 합니다. 현재 스케줄대로면 한빛·고리 원전은 2031년, 한울 원전은 2032년이면 원전 내 수조가 가득 차 더는 보관할 수 없게 됩니다. 특별법에는 부지 내 임시 저장 시설 건설을 위한 주민 의견 수렴 절차와 지원 방안 등이 담깁니다. 임시 저장 시설 건설을 위해선 설계 2년, 인허가와 건설에 각 2년 반씩 모두 7년이 걸립니다. 탈원전 폐기로 원전 가동이 확대되면 수조 포화 시점이 더 당겨지게 돼 지금 당장 시작해도 빠듯한 일정입니다.

지난 12일 산업부 업무보고 때 윤석열 대통령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와 관련해 “정부가 법제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민주당도 여당 때인 지난해 9월 특별법을 발의했을 정도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원전 가동을 위해 방폐물 관리는 필수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여야가 서둘러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