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금속노조 하청지회와 협력회사협의회가 22일 협상을 타결하면서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독(dock) 무단 점거 사태는 공권력 투입 없이 51일 만에 종료됐다. 조선업계 안팎에선 이번 협상 타결로 원·하청업체와 근로자가 공멸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불거진 노노(勞勞) 갈등과 노사(勞使)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데다 파업 기간 발생한 8000억원대의 손실을 만회하는 것도 쉽지 않아 대우조선해양이 상당 기간 후유증을 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독 점거 후 요구 사항 관철하는 관행 또 반복
양측은 이번 협상에서 손해배상청구 소송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하고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노사 간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파업으로 큰 손해를 입은 일부 협력업체 대표들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협력업체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 조선업체 임원은 “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원칙을 이번에도 관철하지 못했다”면서 “또다시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하청지회는 이번 사태 이전에도 지난해부터 4차례나 독을 점거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업계와 협력업체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4월 7일 대우조선해양 1독을 점거했고 올해 들어서도 지난 4월 두 차례, 5월 한 차례씩 2독을 점거했다. 이들은 독을 점거할 때마다 임금 인상이나 고용 승계를 요구했지만 이 당시에도 별다른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잘못된 선례가 반복되면서 민주노총이 사업장의 핵심 시설을 장악한 뒤 이를 볼모로 협상에 나서는 전략을 이번에 또 들고 나온 것이다.
원·하청 근로자 사이의 노노(勞勞) 갈등에 따른 후유증도 심각하다. 대우조선해양 원청 직원들은 그동안 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배포하거나 집회를 열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하청지회의 불법 파업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직원 수백 명은 지난 18일부터 휴업 대상자가 되면서 최근 3개월 평균임금의 70%만 받는 손해까지 입었다. 여기에 하청지회 조합원들이 비조합원인 동료 근로자들의 출근을 저지하고 몸싸움까지 벌인 상황이라 갈등을 봉합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8000억원대 손실 복구 어려워
대우조선해양은 또 이번 파업 기간 동안 동시에 4척을 건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1독의 진수 작업이 막히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 회사는 파업이 시작된 지난달 2일부터 이달 22일까지 매출 손실 6468억원 포함 총 8165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밝혔다. 여기엔 선박 11척의 인도 지연에 따른 지체보상금 271억원도 포함돼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하청지회 측에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검토하고 있지만 소송을 하더라도 재판을 통해 손해를 전부 배상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손해를 최소화하려면 건조 속도를 높여서 공정 지연을 최대한 해소하는 방법뿐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이 23일부터 휴가에 들어가지만 상당수 인력이 출근해서 파업 기간 동안 중단된 진수 작업을 비롯한 각종 공정에 투입될 것으로 안다”면서도 “지연된 공정을 3~4주 정도는 만회할 수 있겠지만 두 달 가까이 파업이 이어졌기 때문에 완전한 공정률 회복은 어렵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이 공정 지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선박 인도 후 받는 건조 대금을 당초 예상 시점보다 늦게 받게 돼 유동성 악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미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지분율 55.7%)인 KDB산업은행이 불법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 보상을 위해 1원도 추가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공적 자금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9조원의 부채가 쌓인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영업손실 1조7547억원, 올 1분기 영업손실 4701억원을 냈다. 조선업계에선 “대우조선해양이 근본적으로 사업 경쟁력을 회복해 수익성을 높이고 근로자의 처우도 개선하지 않는다면 같은 사태가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