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충남 논산시 화지중앙시장 안 하나로 장군마트. 계산대에선 네팔 국적 남성이 세제와 쌀, 맥주 10여 캔을 비닐봉지에 옮겨 담고 있었다. 그 시각 마트에서 장을 보는 손님 예닐곱 모두가 외국인이었다. 시장 입구 버스 정류장에선 장보기를 마친 외국인 3~4명이 버스를 기다렸고, 베트남 남성 3명은 택시를 불러 트렁크에 돼지고기, 설탕, 얼음, 맥주가 가득 담긴 장바구니를 싣고 떠났다. 마트 직원은 “이들은 시장 인근 농공 단지나 하우스에서 일하는 외국인”이라며 “이들이 일을 쉬는 토요일 저녁이면 시장 손님의 80~90%가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10년 새 인구가 9.6% 감소한 충남 논산시의 외국인 주민 수는 7361명(2020년 기준). 전체 주민의 6.1%에 해당한다. 시 관계자는 “일감을 찾아 공장이나 농가를 옮겨 다니느라 주민으로 등록되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실제로 논산에 거주 중인 외국인은 2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이 늘면서 지역 상가나 재래시장의 빈 점포엔 태국·베트남·네팔 음식을 파는 식당, 아시아 식료품점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화지중앙시장의 한 상인은 “일주일 치 장을 한 번에 보고 모국 메뉴를 파는 식당을 아지트 삼아 수시로 모임을 갖는 외국인들은 상인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고객들”이라고 말했다.
◇지역 상권, 재래시장의 큰손
안산과 논산 사례가 보여주듯, 외국인들은 젊은 인구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 쪼그라든 지방 도시나 농촌에서 그 공백을 메우며 새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과거 지역 농가나 공장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선에 그쳤던 외국인들이 이제 소비를 통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
시화공단이 있는 경기 시흥, 남동공단이 있는 인천, 조선소가 밀집해 있는 거제 등 전국 곳곳에도 외국인 밀집촌과 상권이 생기고 있다. 홍규호 인천남동구가족센터 센터장은 “통상 ‘서울 생활권’으로 분류되는 지역은 인구 유출로 상가마다 빈 점포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서울 근교 안산, 부천은 외국인이 유입돼 공실이 적다”며 “큰 공단 인근에선 택시 승객도 상당수가 외국인”이라고 했다.
특히 재래시장을 선호하는 외국인들은 각 지방 재래시장에선 없어서는 안되는 큰손 고객이다. 충남의 한 재래시장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장년 시장 상인들은 언어 문제나 편견 등으로 외국인 손님 맞기를 꺼렸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외국인 손님들이 물건을 많이 사는 데다 식당에서 단체 회식도 많이 하면서 상인들로선 이들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라 식료품점은 동남아시아 향신료를, 정육점은 외국인이 많이 사는 내장류를 일부러 들여놓는 등 가게마다 구색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들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지역 경제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외국인 밀집 지역에서 식당이나 가게를 차려 운영하는 외국인이 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가슴에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나 잡화점을 하며 더 큰 성공을 꿈꿨던 한국인들처럼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들도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네팔 출신 카드카간 샴(37)씨는 2017년 경기도 안산에 인도·네팔 음식점을 차렸다. 그가 하는 식당은 한 달 매출이 2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장사가 곧잘 된다고 한다. 샴씨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잘사는 나라에서 꼭 일해보자’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왔다”며 “한국에 올 때만 해도 식당 사장이 될 줄은 몰랐지만 열심히 살다 보니 처음 꿈꿨던 것 이상의 목표를 이루게 됐다”고 했다. 한국인 남성과 국제결혼을 해 한국 국적을 얻은 베트남 출신 김모(36)씨는 안산에서 통신사 대리점을 운영한다. 처음엔 베트남 손님을 전담하는 직원으로 시작해 3년 전 직접 가게를 차렸다고 한다. 김씨는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동질감도 있고 말도 잘 통하다 보니 지금도 주 고객은 베트남인”이라며 “다문화 특구에선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곳보다 더 영업하기 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