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1000여 명의 태경그룹을 이끄는 김해련(60) 회장은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27세에 여성복 브랜드를 창업한 디자이너였고, “누가 인터넷으로 옷을 사느냐”는 1999년 국내 첫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만들었다. 그는 국내 1호 트렌드 컨설턴트이기도 하다. 중견기업 오너 외동딸로 본인 사업을 하던 김 회장은 2012년 아버지 고(故) 김영환 회장 요청에 태경그룹에 합류했고, 2년 뒤 김 회장이 작고하면서 지금까지 그룹을 이끌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 태경그룹 본사에서 만난 김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화장품 신소재 사업 얘기부터 꺼내며 “하루하루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고민한다. 나는 천생 사업가”라고 말했다.
◇디자이너, 컨설턴트에서 중견그룹 회장으로
1984년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난 김 회장은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미국의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를 접했다. 그는 “나이키 현상 자체가 혁신이었고, 패션 사업이 해보고 싶어 MBA를 딴 뒤에도 뉴욕 FIT(뉴욕 주립 패션 공과대학교)로 진학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패션 변방이었던 우리나라에서 ‘한국의 샤넬’을 꿈꿨던 그는 귀국해 1989년 여성복 업체 아드리안느를 창업했다. 한 해 만에 국내 3대 백화점에 모두 입점했다. 하지만 IMF 외환 위기로 회사가 휘청하자 온라인 판매로 눈을 돌려 1999년 의류 쇼핑몰 패션플러스를 창업했다. 한때 연 매출 800억원을 찍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산업은행 벤처투자펀드에서 여성 기업인으로 처음 투자받은 사례”라며 “투자 설명회 갔더니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누가 인터넷으로 옷을 사겠느냐’며 딴죽을 걸더라”고 했다.
“중견기업 오너 외동딸이고 결국 회사 물려받을 텐데 굳이 어렵게 사업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나 혼자 힘으로 내 사업을 이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초 소재, 무기화학 분야에서 50년간 주력해온 태경그룹은 김영환 회장이 1975년 창업한 태경산업(옛 한국전열화학공업)이 모태다. 드라이아이스와 액체탄산가스, 생석회 등 13개 부문에서 국내 1위다. 이 중 고순도 수산화칼슘과 친환경 석회질 비료, 나노 이산화티타늄 등 5개 제품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한다. 태경그룹은 지난해 매출 5167억원(연결재무제표 기준), 영업이익 405억원을 올렸고 올해는 매출 8000억원을 목표로 한다.
◇”여성 기업인 역량 펼치게 도와야”
김 회장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공장 사무실을 매일같이 드나들면서 “언젠가 가업을 물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회사를 떠맡게 되면서 난관이 작지 않았다. 업종이 다른 탓에 당장 화학 등 기초 지식부터 모자랐다. 김 회장은 “아버지가 일군 장학 재단 출신인 서울대 박사 과정 학생들한테서 원자·분자부터 화학 강의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경영을 맡은 후 종합 연구소를 세워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회장 직속의 혁신 조직을 신설하는 등 경영 혁신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또 3건의 인수·합병을 진두지휘하는 등 신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친환경 화장품 소재 사업, 굴뚝 기업들이 배출하는 폐기물을 화학 가공을 거쳐 다시 탄산칼슘으로 가공하는 사업 등이다. 태경그룹은 현재 세계 37국 2090사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데, 회사 창립 50주년이 되는 오는 2025년까지 50국 2500사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김 회장이 그룹의 핵심으로 생각하고 관심 갖는 분야 중 하나가 장학 사업이다. 그는 “가난 탓에 서울대 상대를 어렵게 졸업한 아버지는 기업이 국가 이익에 보탬에 되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이 확고했다. 저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김 회장 선친은 창업 3년 차인 1977년 손익분기점을 넘자 가장 먼저 사내 장학금 제도를 만들었다. 1983년엔 재단을 설립해 장학 사업을 펼쳤다. 그동안 형편이 어려운 816명 대학생에게 120억원을 지원했다. 지방 출신 학생을 위해 기숙사인 송원학사도 세웠다.
김 회장은 “지금도 ‘왜 기업 회장이 여자냐’라는 질문을 듣는데, 여성 기업인들이 적극적으로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