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올 상반기 14조원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작년 영업손실(5조8600억원)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반년 만에 2배가 훨씬 넘는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발전 자회사로부터 전력을 비싸게 사 소비자에겐 싸게 파는 ‘역마진’ 구조가 굳어지면서 발생한 예견된 적자다. 천연가스(LNG) 가격이 급등하면서 7월 이후 한전의 전력 구매 가격은 상반기보다 오른 상황이어서 3분기와 4분기 적자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 업계에선 올 한 해 30조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예상한다.

한국전력 나주 본사 전경. /조선DB

한전은 2분기 매출이 작년보다 14.2% 증가한 15조5280억원을 기록했다고 12일 공시했다. 영업이익은 6조5163억원 적자로 시장 전망치보다 1조원이나 더 나쁜 성적표를 내놨다.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악을 기록했던 1분기 영업손실(7조7869억원)을 합하면 상반기 14조3033억원 적자다. 단일 기업이 낸 최악의 영업손실이다.

전기 판매 수익 등 매출은 늘었지만 같은 기간 LNG, 석탄 등 발전에 쓰이는 연료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한전의 전력 구입비가 급등했다. 상반기 LNG 가격은 t당 134만4100원으로 작년보다 133% 올랐다. 유연탄 가격도 t당 318.8달러로 222% 인상됐다.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살 때 기준이 되는 전력 구매 가격(SMP)은 kWh(킬로와트시)당 78원에서 169.3원이 돼 2배 이상으로 뛰었다. 반면 한전의 전력 판매 단가는 kWh당 110원 수준에 머물렀다. kWh당 60원 가까이 손해 보고 파는 구조가 상반기 내내 이어졌다.

업계에선 올해 한전의 적자 규모가 최대 3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8월 들어 SMP 가격은 전력 시장 개설 이래 최고치인 kWh당 200원 수준으로 뛰어오르면서 전력 구매 비용은 3~4분기에 더 크게 늘어난다. 올 들어 4월(kWh당 6.9원)과 7월(5원) 두 차례 전기요금을 올렸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10월에도 kWh당 4.9원 인상이 예정돼 있지만, 현재 연간 kWh당 5원으로 제한된 연료비 연동제에서 추가 인상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전기요금을 kWh당 100원 인상해 지금의 2배로 올려도 올해 한전 적자를 메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사상 최악의 영업손실에 대응하기 위해 비핵심 자산 매각 등 실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만 이를 통해 가시적으로 실적을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 비용절감, 부동산·해외 투자 지분 매각 등을 통해 6조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1조8000억원에 그쳤다. 심각한 위기에 몰린 한전은 이례적으로 정부에 전기요금 인상을 강하게 촉구했다.

한전은 이날 실적을 발표하면서 “한전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전력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며 “지속 가능하고 원가주의에 기반을 둔 합리적 전기요금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가스 수급이 불안정해지자 유럽 각국은 이미 폐지한 석탄 발전기를 다시 가동하기로 결정했고 일본도 원전 재가동 승인을 내렸다”며 “상대적으로 연료비가 저렴한 원전과 석탄 발전기를 최대한 가동해 가스 수입량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가가 급증하는데도 낮은 요금 수준을 유지하면 단기적으로는 물가 안정 등 일부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효율 저하, 무역수지 악화, 에너지 안보 위협 등 부정적 효과가 훨씬 더 크게 다가올 것이라고도 했다. 한전은 “급격히 증가하는 원가 요인을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교각살우(矯角殺牛)’,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상황”이라고 했다

5년 동안 탈원전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원전을 중단해도 전기요금은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지난해 해외 각국이 에너지 가격 상승에 발맞춰 전기요금을 인상할 때에도 이런 입장을 고수했다. 이날 한전은 “원전, 재생에너지, 화석연료 등 적절한 전력 생산·수송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전력 공급 비용을 최소화해 국민 부담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