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요 언론들은 지난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복권 결정을 비중 있게 다뤘다. 150개 넘는 기사들이 쏟아질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전 세계 반도체 분야의 수요 둔화에 맞서고 있는 한국 최대 기업 경영자가 앞으로 신성장 동력 확보와 M&A를 어떻게 진행할지 초미의 관심사”라며 앞으로의 경영 행보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이 부회장 앞에는 해결해야 할 많은 경영 과제가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압도적이지만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는 세계 1위 TSMC와 격차가 크고, 스마트폰과 TV·가전에서도 거센 추격을 당하고 있다. 바이오 외에는 반도체를 이을 성장 동력도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매주 한두 차례씩 출석해야 하는 삼성물산 합병 재판이 남아 있긴 하지만, ‘취업 제한’ 족쇄를 풀어준 만큼 이제는 철저하게 경영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더 시급하게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도 있다. 법무부는 “범국가적 경제 위기 극복이 절실한 상황을 고려해, 적극적인 기술 투자와 고용 창출로 국가의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주도하는 주요 경제인을 엄선했다”며 이 부회장의 사면 배경을 밝혔다. 지금 우리 경제는 물가·금리·환율이 동시에 오르는 3고(高)로 인한 복합 위기 국면에 진입했다. 경제 핵심 동력인 수출은 지난 분기보다 3.1%나 줄었다. 내수 경기 역시 급격히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 물가는 6%의 벽을 뚫었고, 기대 인플레이션은 10년 만에 최고다.
이런 복합 위기 상황에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마른 수건 짜기’ 식으로 비용 절감만 할 게 아니라 과감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기업가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 이런 대기업 투자·성장의 혜택이 그 종업원들과 협력 업체들에도 골고루 퍼져야 한다. 추석을 앞두고 시름이 깊어가는 소상공인을 위해 전통 시장 상품권 구매 등 상생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 부회장은 복권 발표 직후 “지속적인 투자와 청년 일자리 창출로 경제에 힘을 보태겠다”며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기업인 사면에 대한 논란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당초 대한상의 등 경제 단체는 50명이 넘는 경제인들의 사면을 요청했다. 여기에는 이 부회장과 함께 2017년 국정 농단 사건으로 함께 구속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등 상당수 전문 경영인들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 경제인 사면은 단 4명에 불과했다. “왜 경제인을 단 4명만 사면시켰나. 더 시켰어야 했다”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이 부회장 스스로 사면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