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때 시행(2018년 11월)된 신(新)외부감사법으로 인해 기업들이 지출하는 감사 비용이 4년 전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외부 감사인(회계법인)으로부터 받는 감사 시간도 40% 이상 증가하면서 기업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외부감사법은 전 정부에서 도입된 대표적인 기업 악법”이라면서 “새 정부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외부감사법은 세 가지 제도로 요약된다. 상장사가 6년 연속 자율적으로 회계 법인을 선정했다면 이후 3년은 정부가 지정한 회계법인을 선임해야 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설치한 위원회에서 감사 시간을 결정하는 표준감사시간제,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외부 감사 의무화다. 2012~2014년 대우조선해양이 5조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르자 국내 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제도 시행 4년이 지나면서 당초 취지와 달리 기업 현장에서는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17일 본지가 한국상장회사협의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장사들이 지출한 감사 보수 총액은 5476억원으로 제도 시행 전인 2017년(2375억원) 대비 1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감사 보수 총액은 연평균 23.22%씩 증가했다. 한 업체당 평균 감사 시간도 2017년 1700시간에서 지난해 2447시간으로 43% 늘었고, 2017년 7만4000원이었던 시간당 감사 보수는 지난해 10만1000원으로 늘었다.

감사 보수가 늘어난 것은 정부가 지정한 회계법인이 요구하는 대로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코스닥 기업 관계자는 “지난해 7억원의 이익을 냈는데 지정감사인 비용으로 5억원을 쓰고,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 감사에도 2억원을 썼다”면서 “기존 감사인은 1억원을 받고 일을 다 해줬는데, 그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우리 기업이 왜 이런 비용을 지불하고 감사를 받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그동안 회계부정을 저지른 적도 없고 기업 규모가 작아서 굳이 장시간 감사를 받을 이유가 없는 회사들이 표준 시간만큼 감사를 받아야 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감사 보수와 시간은 늘었지만 회계 품질은 떨어지고 있다고 기업들은 말한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신외부감사법 도입 이후 회계 업무가 늘어나자 회계법인들이 은퇴한 회계사를 임시로 고용해 쓰거나 학업·육아로 현장을 상당 기간 떠난 휴업 회계사까지 투입하는 실정”이라면서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용어도 제대로 이해 못하고 나오는 회계사들이 정말 회계 투명성을 높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일부에선 감사인들이 직접 서류를 작성하고 확인해야 하는 업무를 회사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신외부감사법 도입 이후 주요 대형 회계법인의 매출은 20~9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 사이에서 이 법이 회계법인의 배만 불리는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본부장은 “정부가 주기적으로 회계법인을 지정하고, 개별 기업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일정 시간 이상을 감사받도록 법으로 정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면서 “정상적인 기업에 외부 감사인을 지정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폐지해야 하고 표준감사시간도 자율 규제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