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원전 공사 재개와 관련해 “신한울 3·4호기 환경영향평가를 10개월 이내로 단축할 것”이라며 공사 재개를 위한 신속한 행정 절차를 약속했다. 또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현대차를 제외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해 “이제 세계 경제는 미·중 패권 전쟁 시즌2를 맞고 있다. WTO(세계무역기구)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위배되는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며 대응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 “원전 수출 위해서라면 전용기도 내주겠다”
-’탈원전 폐기’를 내건 정부가 출범했지만, 원전 업계에선 ‘달라진 게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원전 공사 재개는 아파트나 배를 만드는 것처럼 바로 착수하는 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전 절차가 있다. 가장 중요한 환경영향평가를 시작했고 내년 상반기 내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기존 자료를 충분히 활용하고 근처에 있는 신한울 1·2호기 자료도 공유할 계획이다. ‘탈원전 폐기’의 가장 가시적인 모습은 원전 수출에서 나올 것이다. 지난 6월 폴란드와 체코에 출장 갔을 때 ‘새 정부의 원전 정책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제가 ‘탈원전은 완전히 폐기됐다’고 답하니 상당히 안도했다. 윤 대통령도 나토 회의에서 원전 세일즈를 직접 하셨고, 지난 원전 출장 이후엔 따로 ‘원전 수출을 위해 필요하면 전용기도 내주겠다’고 얘기하셨다.”
-지난 정부에선 탈원전 정책과 원전 수출은 별개라고 주장했다.
“탈원전 정책과 원전 수출이 별개라는 말은 형식적인 논리이고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국내 산업을 키우지 않고 수출만 하겠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원전은 건설 기간만 10년 이상이고, 40년 넘게 운영하는데 자국에서 원전을 등한시하는 국가에 발주하는 국가는 없다. 자국에 부품 등 원전 산업 기반이 튼튼하게 갖춘 나라여야 수주 가능성이 커진다. ”
-지난 정부에서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문제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지난 5년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문제도 멈춘 상태였다. 새 정부 들어 법적 기반은 특별법을 통해 준비하고 있고, 관련 기술도 로드맵에 따라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방폐물 처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망한 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을 많이 쓰고 있지만 제대로 처분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제 핀란드가 시작이다. 국내에서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기술 수출 측면에서도 보고 있다.”
-한전의 천문학적인 적자와 관련해 ‘지난 정부에서 산업부와 한전은 도대체 뭐했느냐’는 비판도 많다.
“단기간에 3배 정도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전기 요금 인상 요인이 많이 생겼는데 그것을 적기에 해소하지 못하면서 고스란히 한전 적자로 나타났다. 전력 회사들의 대규모 적자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다만 지난 정부에서 원전 이용률이 좀 더 높았더라면 한전 적자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전 적자는 물가 상황을 고려하고, 소비자 충격을 줄여가면서 조금 긴 시간을 두고 해소해 나가야 한다. 전기와 가스 요금 모두 국민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에너지라는 점에서 전기·가스 분야를 통합한 에너지 위원회를 만들고 독립성을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정책은 어떻게 바뀌나
“탄소 중립 압박이 심해지며 수요가 늘어나는 재생에너지도 확대할 방침이다. 주로 공기업들이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가동하던 과거와 달리 재생에너지 보급도 중요해진 지금, 모든 에너지원을 한 바스켓에 넣어서 전력 가격을 정하는 현행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 각 에너지원에 따라 전력도매가격을 따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금 세계 경제는 미·중 패권 전쟁 시즌2″
-미국 중국을 전기차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인플레 감축법’을 두고 국내 산업계의 우려가 크다.
“미·중 패권 전쟁 시즌1이 첨단 산업의 생산 기지를 자국 내에 두거나 우방과 블록화하는 거였다면 여기에 자국산업 우선주의가 가미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다. 전기차 이슈도 그런 국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자유무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미국 내 여론을 감안하면 WTO나 한·미 FTA 위배 여부에 대한 문제 제기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업계와 함께 법률의 각종 제한을 피해가는 방법도 강구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다른 국가가 따라오기 힘든 초격차 기술을 갖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미국과 비교해 국가 차원의 반도체 산업 지원이 미흡하다는 의견이 많다.
“우리나라는 국내에 메모리 반도체 공장 생산 시설이 많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보니 공장 유치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당근을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세계 각국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가급적 경쟁국들 수준으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7월에 내놓은 대책 보면 과거에 없던 기술·입지·인력 지원이나 노동 규제와 환경 개혁 방안이 들어가 있다. 이번 국회에서 발의한 반도체 강화법도 상당히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해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법과 원칙에 따르려고 한다. 지난 정부의 블랙리스트도 이를 간과하고 인위적으로 정부가 인사에 개입한 사건이었다. 공기업들은 법과 원칙에 따라 관리되고 운영돼야 한다.”
-장관 재임 기간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은?
“산업 대전환의 출발을 만들고 싶다. 우리 산업은 중국의 기술 추격,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자국 우선주의 등으로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다.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선 생산성·기술 혁신을 통한 산업 대전환이 필요하다. 원전 수출 확대를 통한 원전 생태계 복원도 꼭 달성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