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33국에서 가동 중인 원전 439기 중 40%가 최초 설계 수명을 넘겨 계속 운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7년 고리 1호기가 가동 40년 만에 문을 닫은 데 이어 당초 올해 말까지 운전할 예정이었던 월성 1호기가 경제성 조작 논란 속에 2019년 조기 폐쇄되면서 현재 설계 수명을 넘긴 채 가동 중인 원전은 한 곳도 없다.
올해를 끝으로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던 독일이 글로벌 에너지 위기 속에 마지막 남은 3기에 대한 수명 연장을 검토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원전 2기의 계속 운전을 추진하는 가운데 우리도 원전 수명 연장을 위한 승인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4월 최초 설계 수명 40년이 만료되는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2029년까지 국내에서 계속 운전 허가가 필요한 원전은 10기에 이른다.
◇ 세계 원전 40% 수명연장… ‘위험’ 낙인 찍은 한국은 0기
21일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실이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 세계 33국에서 가동 중인 원전 439기 가운데 39.2%인 172기가 설계 수명을 연장한 원전으로 집계됐다. 아직 설계 수명이 남은 원전 중에서도 57기는 이미 계속 운전 승인을 받았고, 6기는 심사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설계 수명이 도래했던 원전 242기를 대상으로 좁히면 최초 설계 수명을 넘겨 가동한 원전은 전체의 92%를 웃도는 223기로 나타났다. ‘탈원전’을 앞세운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설계 수명이 끝난 원전을 ‘노후 원전’이라 낙인찍고 마치 더 이상 운전하면 안전에 큰 위험이 생기는 것처럼 호도했지만, 세계 원전 업계에서는 설계 수명 연장이 대세인 셈이다.
나라별로는 93기를 가동하는 미국에서 설계 수명을 끝내고도 계속 운전 중인 원전이 50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년 이상 된 원전이 90기이며, 기한 만료를 앞둔 원전 35기도 이미 최대 80년까지 계속 운전 승인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가동 원전 수에서 38기로 4위인 러시아는 계속 운전 원전에서는 24기로 미국 다음 자리를 차지했다. 이어 프랑스(19기), 캐나다(17기), 우크라이나(12기) 등 원전 선진국들에서 설계 수명을 넘겨 계속 운전 중인 원전이 많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가동 원전에서는 24기로 6위였지만 설계 수명을 넘겨 운전 중인 원전은 하나도 없고, 계속 운전을 위해 심사 중인 원전도 0으로 집계됐다.
◇ 각국 에너지 위기 대비 가동 늘려… 국내 10기 7년내 수명 끝나지만 탈원전 여파로 연장 논의 늦어져
지난 정부에서 설계 수명 만료 후엔 원전을 폐쇄하기로 한 탓에 줄줄이 심사 신청부터 밀린 탓이다. 2023년 4월 설계 수명이 끝나는 고리 2호기와 2026년 9월 수명이 만료되는 한빛 2호기를 포함해 원전 5기(4450MW)가 심사 대상인데도 2~3년씩 밀린 것이다. 실제로 한수원은 고리 2호기 안전성평가보고서를 설계 수명 만료를 1년 앞둔 올해 4월에야 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수명 연장 심사 신청서를 냈다. 윤석열 정부는 가동 연장 신청을 5~10년 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미 출발이 늦은 탓에 운영 허가가 끝나는 원전 대부분은 수명 만료 후 상당 기간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원안위 심사와 주민 의견 수렴 절차, 노후 설비 교체 등에는 최소 2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설계 수명 만료 1년 전에야 심사를 시작한 고리 2호기부터 1년 이상 멈춰야 한다.
◇ 고리 2호기 수명 8개월도 안 남아 “최소 1년 멈출판, 심사 속도내야”
정용훈 KAIST 교수는 “원전의 설계 수명은 독점을 막기 위한 최초 허가 성격이며, 원전의 물리적인 수명은 80~100년”이며 “40년 동안 운전하면서 안전성을 검증받은 원전에 대해 계속 운전 승인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2030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40% 달성과 같은 탄소 중립 목표와 에너지 가격 폭등 속 전기요금 인상 억제를 위해서도 원전 10기 계속 운전은 필수적”이라며 “승인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기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