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가 이달 1~20일 100억달러 넘게 적자를 기록한 것은 10대 수출 품목 중 반도체·무선통신기기·컴퓨터와 같은 IT(정보기술) 수출액이 급감한 반면 3대 에너지(원유·가스·석탄) 수입액은 크게 증가한 탓이다. 무역 업계에선 향후 무역 수지도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중국 수출 부진과 에너지 수입 급증이라는 이중고가 여전히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에도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경제 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 수출은 현 추세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금리 결정, 에너지 가격 등 악재가 겹쳐 있어 당분간 흑자 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IT 기기 수출 동반 하락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대표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 수출액은 62억7100만달러(8조43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7.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달 1~10일까지 반도체 수출액은 5.1% 감소했었는데 감소 폭이 더욱 확대된 것이다. 이달 말까지 반도체 수출액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는 한 코로나 사태 초기였던 2020년 6월(-0.03%) 이후 처음으로 반도체 수출액이 감소하게 된다.
반도체 수출 감소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로 IT 기기 수요가 줄면서 메모리 가격이 하락한 결과로 풀이된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3분기 반도체 D램 가격이 2분기 대비 최대 18%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가 경제의 성장판 역할을 했던 반도체 업황이 내리막길에 접어들면서 한국 경제 전체에 경고등이 들어온 셈이다.
이와 함께 무선통신기기의 수출액도 전년 동기 대비 24.6% 감소했고, 컴퓨터 주변기기도 32.8% 줄었다. IT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IT 경기 자체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라면서 “반도체 쇼크 못지않게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 정밀 기기는 전년 동기 대비 1.3%, 철강 제품은 0.5% 수출액이 감소했다. 석유 제품의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09.3% 증가하며 전체 수출액 증가를 이끌었지만 IT 업종의 수출액 감소 폭이 워낙 커서 무역수지 적자를 피하지는 못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실장은 “환율이 계속 고공행진하면 생산 비용이 높아지고 수출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며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 무역 수지 악재로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에너지 수입액이 크게 증가한 것도 무역수지 적자의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공급이 불안해진 국제 에너지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동북아 지역 LNG(액화천연가스) 가격은 올 1분기 MMBtu(열량 단위)당 31.2달러에서 3분기 36달러로 올랐다. 2020년 3분기 2.37달러에 비해 1418% 이상 증가한 것이다. 그 결과 이달 가스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80.4% 오른 31억800만달러(4조1700억원)를 기록했다.
원유도 마찬가지다. 원유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54.1% 오른 72억4400만달러(9조7300억원)였다. 지난 19일 기준 두바이유는 전년 동기 대비 41% 이상 오른 배럴당 95.39달러에 거래됐다. 여기에 석탄 수입액은 무려 143.4% 오른 21억3600만달러(2조8700억원)를 기록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맞서서 유럽에 보내는 가스 공급량을 제한하자 유럽 국가들이 대체재인 석탄을 사재기하듯 사모으고 있다”면서 “국제 시장에서 석탄 품귀 현상이 발생하면서 석탄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평균 t당 127.14달러에 거래됐던 국제 유연탄 가격은 8월 셋째주에는 t당 411.31달러까지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