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의 대(對)중국 의존도가 80~90%대로 급격히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중국이 배터리용 광물·소재의 글로벌 생산 기지로 자리 잡은 데 따른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배터리 소재에 관세를 면제하는 정부 정책도 이런 경향을 가속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시행하면서 중국산 소재를 사용한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제한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대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흑연, 수산화리튬 등 80% 웃돌아

22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7월 2차 전지 핵심 소재인 수산화리튬과 코발트, 천연 흑연의 중국산 수입 비율이 모두 80%를 넘겼다. 수산화리튬은 수입액 17억4829만달러(약 2조3500억원) 중 중국산이 14억7637만달러로 84.4%를 차지했고, 코발트는 전체 수입액 1억5740만달러 중 중국 수입액이 1억2744만달러로 81%에 달했다. 천연 흑연은 7195만달러 중 중국 수입액이 6445만달러로 89.6%를 차지했다.

수산화리튬은 완충 시 500km 이상 주행할 수 있는 하이니켈 배터리의 핵심 소재로, 최근 수입이 급증하면서 중국산 비중도 가파르게 높아졌다. 수산화리튬은 2018년 전체 수입액 2억2929만달러 중 중국 비율이 64.9%에 그쳤지만 지난해 수입액이 폭증하며 84%를 기록했다. 올해는 1~7월 7개월 만에 중국산 수입액이 작년 1년 치의 두 배를 넘겼다.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수산화리튬 제조 업체가 중국에 많다 보니 중국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양극재의 핵심 원료로 배터리 출력과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코발트도 2019년까지는 중국 의존도가 50%대에 그쳤지만 이젠 80%를 웃돌고 있다. 음극재 주원료인 천연 흑연도 2018년 중국산 비율이 80%대 초반이었지만 올 들어서는 89.6%에 달했다.

◇채굴은 글로벌, 가공은 중국에서… 할당 관세 정책도 수입 부추겨

중국은 전기차 소재 생산에서 압도적인 독점력을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원자재 시장조사 업체 BMI에 따르면 중국에는 전 세계 양극재 업체 142개사 중 80%인 114사, 음극재는 156사 중 78%가 넘는 123사가 몰려 있다. 5대 리튬회사 중 4사가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고, 흑연은 6대 업체 모두 산둥과 광둥 등 중국에 본사가 있다. 매장량이나 채굴량에서는 아프리카나 호주, 중남미 국가에 뒤지는 광물이라도 제련·가공 공장이 중국에 몰려 있다 보니 세계 각국의 대중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코발트는 콩고민주공화국이 채굴량 기준 지난해 전 세계 시장(17만t)의 70%를 웃도는 12만t을 점했지만 콩고민주공화국 코발트 수출 물량 대부분이 중국으로 향하면서 코발트 가공 시장에선 중국 비중이 3분의 2에 달했다. 리튬 또한 호주와 칠레가 채굴량에서는 중국을 앞서지만, 중국이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등의 리튬 광산 지분을 확보하면서 중국이 전 세계 리튬 채굴량의 절반, 리튬 가공 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다. 강천구 인하대 초빙교수는 “중국은 화유코발트, 간펑리튬그룹 등 각 소재 분야 세계 1위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며 “전 세계 산지에서 채굴한 광물이 중국에서 가공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배터리 소·부·장 품목에 대해 5~8% 관세를 없앤 것도 중국 의존도를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지난해부터 양극재 원료 등에 대해 할당 관세 유예를 적용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내재화보다는 소재 수입으로 방향을 틀었다”며 “정부가 국내 산업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인플레 감축법’을 시행해 중국산 광물·소재를 사용한 전기차 배터리의 채택을 2024년부터 제한할 예정이다.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배터리의 핵심 자재(리튬·니켈·코발트 등)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배터리 주요 부품(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도 북미산을 써야 한다. 장상식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수입국 다변화 및 대체 생산이 절실하다”며 “국내 업체들이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미국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기업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