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당시 공기업에 다니던 여상훈(37)씨는 가업(家業) 승계를 위해 아버지가 1998년 설립한 문구 유통업체 빅드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여씨가 경영에 참여한 뒤 회사는 온라인 판매에 진출해 매출이 커졌고, 문구류 직접 제조에도 나섰다. 지난해 용인에 문구 제조 공장도 지었다. 2014년 13억원 수준이던 매출이 지난해 57억원으로 커졌고 직원도 3명에서 20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회사의 성장은 여씨가 준비해온 가업 상속을 도리어 불리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구 제조가 주력 사업이 되자, 업종이 문구 도소매업에서 제조업으로 바뀌어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현재의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업종을 10년 이상 유지해야 상속 재산 중 200억원(20년 300억원·30년 500억원)을 과세 대상에서 공제해주는데, 빅드림처럼 업종 변경이 이뤄지면 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여씨는 “공장 짓고 회사를 키워 사람을 더 고용했더니 가업상속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다”며 “사업을 열심히 확장했다는 이유로 최소 수십억 원에 이르는 세금 혜택을 못 받는 불이익을 받을 줄 알았다면 이런 노력을 쏟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 기기를 만드는 A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전기 시공 매출이 급증했다. 이 때문에 주 업종이 제조업에서 건설업으로 바뀌어 가업 승계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A사 대표는 “기업 환경은 계속 변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경우 승계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본격 도입됐지만, 업종 전환 제한과 같은 걸림돌이 많아 중소기업들이 이 제도 혜택을 보는 경우가 드물다. 전국적으로 가업 승계를 앞둔 중소 제조·서비스 기업 대표가 12만명에 육박하는데, 정작 이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은 한 해 100여 곳에 불과하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독일·일본은 가업 승계 세제 지원 시 업종 유지 같은 제한이 없다”며 “건실한 중소기업들이 유지되며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국도 가업 승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