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바이오스마트 본사에서 만난 박혜린(53) 회장은 회의를 막 끝낸 참이었다. 그는 “앞으로 2~3년은 불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지난 5월부터 전 사적으로 하반기 사업 계획을 재점검하고 있다”고 했다.
성공한 국내 여성 창업가들은 대개 한 우물을 깊게 파 특정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박 회장은 여성 경제인 중에서도 보기 드문 유형이다. 30여 년간 M&A(인수·합병)를 거쳐 카드 제조 회사 바이오스마트, 센서 업체 옴니시스템 등 코스닥 상장사 두 곳을 포함해 오스틴제약, AMS바이오, 시공사, 라미화장품, TCT 등 기업 12개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12사 매출은 총 5000억원이 넘는다. 그가 ‘M&A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유다.
◇대학 4학년 때 창업의 길로… 30년 사업가 길
박 회장은 쌀 도매상 집 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게 장부를 곧잘 정리할 만큼 수완이 남달라, ‘나중에 큰돈을 벌 사업가가 될 것’이라는 어머니의 기대가 컸다고 한다. 대학 4학년이던 1990년 미국계 기업인 모토로라에 합격했을 때도 어머니는 “취업할 거면 차라리 시집가라”고 할 정도였다.
결국 박 회장은 월급쟁이가 되는 대신 수입 타이어 도매상을 창업해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종잣돈 3억원은 어머니가 빌려줬다. 그는 “전국 타이어 매장에 교육을 다니면서 고객을 모으고, 수입차 물류센터 리스업까지 사업을 확대했다”며 “3년 만에 어머니에게 빌린 돈을 다 갚았다”고 했다. 지금은 타이어 업계의 일상적인 프로모션이 된 ‘타이어 네 짝 사면 한 짝 증정’ 같은 마케팅도 그가 처음 시도한 것이다.
타이어 판매 사업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2007년, 박 회장은 첫 M&A에 나섰다. 박 회장은 “다른 회사 제품을 팔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도 우리만의 제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경영 사정이 어려워진 바이오스마트 ‘백기사(기존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에 우호적인 주주)’로 참여했다가 결국 인수까지 하게 됐다”고 했다.
◇10여 기업, 매출 5000억원 규모 그룹 이끌어
박 회장은 “바이오스마트가 인수 이후 실적이 좋아지면서 M&A를 통한 성장 방식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업계에서 ‘여장부’로 통하는 그는 과감한 결단력을 바탕으로 2008년 진단 업체 디지털지노믹스(현 AMS바이오), 2009년 초소형 전자식 계량기 업체 옴니시스템을 차례로 인수한 데 이어 제약 회사와 화장품 회사까지 사업 영역을 거침없이 확장했다. 이제 그가 이끄는 12사는 바이오스마트를 중심으로 한 지불 결제 그룹, 옴니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관리 그룹, AMS바이오를 비롯한 제약·바이오·화장품 그룹이 분야별로 시너지를 내며 성장하고 있다.
그는 “M&A를 통한 성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려면 기존 사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과 기술을 추가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최근 시장이 확대되는 바이오 분야에서 신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아직 연구소 생산 수준인 진단 시약 분야에 QC(품질관리)에 기반한 대량생산을 접목해 시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