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문구점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다이소, 무인과자점 등 저렴한 학용품과 먹을거리를 파는 대형 매장들이 생겨나면서 폐업하는 문구점이 속출하고 있다./조선DB

경기 성남시 수내초 인근 한 문구점은 폐업을 앞두고 오는 24일까지 전 제품을 원가에 판매하고 있다. 지난 6월엔 경기 용인시 용천초 앞 문구점이, 7월엔 경남 김해시 율하초 앞에서 수십년간 자리를 지키던 문구점이 폐업했다. 서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던 서울 강서구 신월초 인근 A 문구점은 지난 5월 재고정리 후 폐업했다. 이 문구점 관계자는 “한 곳에서만 20년을 운영해왔는데, 학교에서 아이들 준비물을 일괄 지급하는 경우가 늘었고, 인터넷 문구점이나 저가 생활용품점이 생기면서 더더욱 어려워졌다”며 “결국 수십년간 쌓여온 재고를 50~70% 세일해 싸게 팔고 폐업하게 됐다”고 했다. 서울 노원구 공연초 앞 문구점도 최근 사라졌다.

초·중·고등학교 앞을 지키며 학생들의 준비물과 먹을거리를 책임지던 학교 앞 문구점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협동조합)에 따르면 2017년 1만 620여개이던 전국 문구소매점수는 2019년 9468개로 줄었다. 이후에도 매년 400~500개씩 문구 소매점이 계속 줄어들면서 현재는 8000여개의 문구 소매점만 남아있을 것으로 협동조합 측은 추정하고 있다. 협동조합 관계자는 “학교에 학용품을 납품하기 위해 거주지 등에 사업자등록을 해놓거나 스마트 스토어로 문구류를 판매하는 ‘유령 문구점’이 늘어나는 반면 학생들이 용돈을 들고와 먹을거리나 학용품을 사던 동네 문구점은 이제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대형 쇼핑몰에 이어 무인과자점에 빼앗기는 학생손님

‘학교 앞 문구점’이 사라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학령인구(6~21세)가 계속 줄어드는데다가 최근엔 학교에서 ‘학교장터’를 통해 입찰한 업체에서 종합장 등의 학습 준비물을 일괄 구매해 학생들에게 나눠주면서 문구점을 직접 찾는 학생이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학령인구는 748만 2000명으로 5년 전(846만 1000명)에 비해 13% 감소했다.

이후 저렴한 가격에 학용품을 파는 온라인 문구 쇼핑몰이 생겨나고, 대형 생활용품점가 우후죽순 생겨나며 ‘학교 앞 문구점’은 설 자리를 더 잃었다. 다이소는 작년 말 기준 전국에 1390여개 매장을 운영중이다. 아트박스나 핫트랙스 등도 많아졌으며, 대형 온라인 문구 쇼핑몰들 역시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이후 문구점은 문구나 완구 대신 저렴한 과자나 아이스크림 판매를 늘려왔지만, 최근 학교 앞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무인 과자, 아이스크림 매장들에 학생 손님을 또 빼앗기고 있다. 실제 지난 2일 오후 3시쯤 서울 강동구 천일초 앞 한 문구점엔 학생 2명뿐이었지만, 바로 옆 건물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엔 학생 14명이 있었다. 학교 앞 문구점은 다이소나 온라인 문구쇼핑몰뿐 아니라 편의점, 1000~2000원짜리 먹을거리를 파는 무인 식품 매장 등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며 더 자취를 감추고 있다.

◇업종변경·영업시간 단축 ‘자구책’ 마련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학교 앞 문구점 사장들은 수입이 줄자 ‘투잡’(Two job)을 하거나, 문구점 영업시간을 줄이는 등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 천일초 앞 문구점을 운영하는 권모(60)씨는 문구점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아이스크림 기계를 구매해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도 함께 운영 중이다. 권씨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던 2020년엔 너무 어려워 문구점 앞에서 붕어빵 장사까지 했었다”며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지금은 사정이 좀 나아졌지만 그래도 하루 20~30명 정도가 1000~2000원 푼돈을 쓰는 게 전부”라고 했다.

등하굣길에만 잠깐씩 영업하고 일찍 문구점 문을 닫는 경우도 많다. 서울 강동구의 한 ‘학교 앞 문구점’의 김모(62) 사장은 “학생들 등교시간에 잠깐 영업했다가 오전 9시~오후 1시까지는 문을 닫는다”며 “헛걸음하는 손님들한텐 미안하지만, 그 시간에 문을 열어봤자 손해만 커질 뿐”이라고 했다.

판매하는 물건 가짓수를 줄이기도 한다. 24년째 ‘학교 앞 문구점’을 하는 김모(68)씨는 “문구점에 수십년 전 인근 초등학교 체육복, 이젠 사가지 않는 ‘과학의 날’ 글라이더 키트 같은 재고들이 너무 많이 쌓여 문구점이 아니라 골동품점 같다”며 “10여년 전만 해도 하루 2번씩 물건을 배달받았지만, 이제 가지 수도 줄이고, 최소한으로 물건을 사온다”고 했다.

◇문구소매업계, 동반위 등에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

협동조합은 지난 7월 영세한 문구소매업을 보호하고 대형 쇼핑몰이나 마트의 무분별한 시장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동반성장위원회 및 중소벤처기업부에 문구소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추천 요청 및 신청서를 제출했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과 품목은 영세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진출이 제한된다. 정낙전 협동조합 이사장은 “학교 앞 문구점을 비롯한 영세 문구점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통해서만이 문구소매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