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르면 다음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나 세계적 반도체 팹리스(설계) 기업인 ARM 공동 인수합병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21일 오후 2주간의 해외 출장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는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 도착해 ‘영국 ARM 경영진과 만났는지’ 질문에 대해 “회동 안했다”면서도 “아마 다음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서울에 올 것인데, 아마 그때 무슨 제안을 하실 거 같은데 잘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ARM은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AP 설계 분야에서 핵심 기술을 보유한 업체로, 소프트뱅크가 모기업이다. 전문용어로 설계자산(IP)을 파는 회사로, 전 세계 모바일 반도체 90% 이상이 ARM의 IP를 사용하고 있다. 또 서버용 프로세서, 자동차, 카메라 등 반도체가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에 설계 IP를 제공 중이다. 퀄컴과 애플, 삼성전자도 ARM IP에 기반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손 회장을 만나 이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힘에 따라, 양측의 논의가 상당 부분 진행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소프트뱅크는 2020년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ARM을 매각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당시 거론된 인수 가격은 400억달러(약 55조8000억원)에 이른다.
◇ 독과점 논란으로 엔비디아의 인수는 무산돼
ARM 인수는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독과점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삼성전자를 축으로 한 공동 인수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엔비디아 인수가 무산된 것도 독과점을 우려한 주요국의 반대 때문이었다. 삼성전자 역시 메모리 반도체 1위, 파운드리 2위의 시장 지위를 고려할 때 독과점 문턱을 넘기는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도 올해 초 “전략적 투자자들과 함께 컨소시엄으로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시장 조사 업체인 엔드포인트테크놀로지어소시에이츠는 지난달 30일 이 부회장과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를 만났을 때 ARM 공동 투자에 대해 논의했을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의 주요 목적은 어려운 환경에서 정말 열심히 회사를 위해, 우리나라를 위해서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을 격려하러 간 것”이라고 했다. 또 “특사 임명을 받아서 그거 끝나고 영국가려고 했는데 여왕이 돌아가셔서 일정이 조금 바뀌었다”며 “세기의 장례식이라는 데 저도 존경하는 여왕님 장례식에 참석 못했지만 같은 도시에서 추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내 회장 승진 계획에 대해선 “회사가 잘 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해외 출장길에 올라 캐나다와 멕시코 등 중남미와 영국을 다녀왔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라우렌티노 코르티소 파나마 대통령 등을 만나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을 요청하고, 삼성전자 케레타로 가전 공장 등을 찾아 임직원들을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