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조선·자동차·타이어를 포함한 주요 제조업계에서 파업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 정규직 노조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조까지 근로 조건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잇따라 파업에 돌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대우조선해양·하이트진로 불법 파업 같은 과격 사태를 겪게 될까 봐 긴장하고 있다. 한 제조업체 임원은 “글로벌 경기 불황과 함께 기업들의 실적 부진 전망이 잇따르는데 노조의 파업까지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면서 “노조의 권리는 존중하지만 노사가 상생해야 이 경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앞에서 전국금속노조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최근 세계 경제가 침체기로 접어든 가운데 국내 철강·자동차·조선을 비롯한 제조업계 노조가 잇따라 파업을 벌이며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뉴시스

◇철강·조선·자동차·타이어 파업 리스크 커져

노조의 사장실, 공장장실 점거가 약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현대제철에서는 민주노총 산하 4개 지회(당진·인천·포항·당진하이스코)가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노조는 앞서 지난 5월 말 기본급 16만5200원 인상을 포함한 공동 임단협 요구안을 사 측에 보냈지만, 협상이 진행되지 않자 지난 7월 말 노조원 투표를 통해 파업권을 확보했다. 이후에도 교섭이 이뤄지지 않자 언제든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태세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노조는 공동 교섭을 주장하고 있지만 공장별로 임금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사 측은 별도 교섭을 요청하고 있다”면서 “노조가 일방적으로 정한 노사 교섭 일정에 현대제철 측은 응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에선 현대제철 노조가 조만간 파업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호타이어에서도 지난 19일 임금 협상이 결렬되자 노조가 21~22일 쟁의행위에 대한 조합원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노조는 임금 5%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자료=각 사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도 잇따르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는 지난 21일 임금 체계 개선을 요구하면서 전면 파업을 벌였다. 이들은 협력 업체들과 지난 5월부터 단체교섭을 했지만 교섭에 진척이 없자 파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는 주로 울산 공장 생산 라인에서 자동차 부품 배치, 설비 수리를 담당하는 근로자 64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현대삼호중공업 하청지회 근로자 100여 명도 지난 15일 기본급 인상과 위험 작업 안전 조치를 요구하며 집단 업무 거부를 벌였다. 그 여파로 일부 작업 공정률이 한때 약 50% 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노사가 일당 1만원 인상에 합의하면서 파업은 마무리됐지만 조선업계에선 “하청 근로자의 처우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언제든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의 독(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 불법 점거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도 불법 파견 해소를 요구하며 28일 오전 7시부터 24시간 동안 파업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불황에 파업까지 기업들 골머리

일각에서는 노조들이 경기 불황이나 자연재해 같은 악재를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철강 분야의 경우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태풍 피해로 수개월간 정상적인 조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현대제철 노조마저 파업을 하면 철강 제품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재고로 버티고 있지만 포항제철소 침수 사태와 현대제철 파업이 겹치면 후판(선박에 사용되는 두께 6mm 이상 철판) 수급을 제때 못 해 선박 생산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글로벌 불황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파업이 국가와 국민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생각해 노사가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장정우 경총 노사협력본부장은 “경제가 어렵고 국민들의 걱정도 큰 상황에서 노조가 힘을 앞세워 파업을 벌이는 것은 우려스럽다”면서 “여기에 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노란봉투법(노조 활동으로 발생한 손해에 기업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법)까지 통과된다면 노조 내부에서도 대화·협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잃게 돼 향후 극단적 노사 갈등이 빈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