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대림역 인근 휴대폰 가게에 직원을 구하는 문구가 붙어있다. 코로나 거리 두기가 풀리고 인건비가 올라가며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자영업자들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고운호 기자

서울 송파구에서 아내, 두 딸과 함께 한식집을 하는 이모(56)씨는 요즘 매일같이 가족들과 다투고 있다. 이씨는 코로나 이후 식당 사정이 힘들어지면서 직원 4명 중 주방 보조 1명만 남기고 3명을 그만두게 했다. 대신 아내가 식당 일을 도왔다. 지난 4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돼 손님이 늘자 아르바이트(알바)생을 쓰려고 공고를 냈지만 한 달 넘도록 지원자가 없어 딸 두 명이 가게 일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딸들이 약속이 있다며 갑자기 일을 못 나간다 하거나, 손님 응대 방식에서도 의견이 달라 서로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한다. 이씨는 “어려운 때 딸들이 도와줘 고맙지만 사사건건 부딪치다 보니 시급을 올려주더라도 직원을 뽑아 쓰고 싶다”고 했다.

최근 ‘긱 워커(일회성 근로자)’ 증가, 외국인 근로자 부족 등으로 극심한 구인난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으로 가족을 고용하는 자영업자가 늘면서 “장사하다 가족이 원수가 될 판”이라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의 고용 현황 관련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7%가 ‘무급 가족 종사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8월 기준으로 전체 자영업자가 569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53만명가량이 무급 가족 종사자를 두는 셈이다. 가족들로서는 원치 않는 일을 하는 데다 같은 공간에서 장시간 일하다 보니 서로 싸우거나 갈등을 빚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구인난에 ‘가족 직원’ 늘자 갈등 잇따라

추모(76)씨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의 한 전집도 구인난을 겪다 지난 4월부터 추씨의 조카 3명이 일을 도와주고 있다. 조카들은 왕복 2시간이 더 걸리는 경기도 광명 등에서 출퇴근하며 “너무 멀어 힘들다”고 투덜거리지만, 직원이 부족한 추씨는 이들을 달래가며 일을 시키고 있다. 추씨는 “조카들도 도와달라는 하소연에 어쩔 수 없이 나오다 보니 다른 직원들보다 쉽게 불만을 표시한다”며 “그래도 직원 구하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함께 일한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고깃집을 하는 이모(64)씨도 “딸이 일을 도와주는데, 딸은 ‘배달 앱에 광고를 더 해야 한다’고 하고, 나는 ‘그럴 바엔 사람을 한 명 더 쓴다’는 식으로 식당 운영에 대해 많이 부딪치고 있다”고 했다.

자녀 가게 일을 도와주는 부모들과도 싸움이 잦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 저가 커피 매장도 알바생이 없어 오전 시간 사장인 김모(22)씨와 김씨의 부모님이 함께 일한다. 김씨는 “부모님이 가게에 나와있을 땐 내가 직원 같다”며 “잔소리가 심해도 창업 자금으로 1억을 빌려주셔서 눈치만 보고 있다”고 했다.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엔 “엄마랑 베이커리를 하는데 둘 다 짜증이 늘고 너무 많이 충돌해 스트레스가 많다. 엄마랑 일을 그만두고, 엄마가 만들던 빵 종류를 앞으론 다른 업체에서 납품받을까 생각 중이다” “설거지 순서, 컴플레인 해결 방법 하나하나 다 부딪친다” “기분 조금만 나쁘면 무급으로 일하던 부모님이 ‘일 안 도와주겠다’고 협박한다”는 식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도 이겨냈지만, 가족과 함께 일하다 최근 갈등이 커져 식당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해결 안 되는 ‘중병’ 된 구인난

구인난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 갑자기 늘어난 알바생 수요 때문에 ‘반짝 현상’일 것이란 예측도 있었으나 늘어나는 청년 지원금, 배달 맨 같은 ‘긱 워커’의 증가로 구인난은 장기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알바생을 못 구해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시간이나 홀 규모를 줄이는 식당도 많아졌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홍모(54)씨는 지난달 알바생 1명이 일을 그만두자 연중무휴에서 주 5일 영업으로 영업 일수를 줄였다. 홍씨는 “2019년보다 알바생 8명 정도가 부족한 상황이라 지난 추석도 처음으로 연휴 전일을 다 쉬었다”며 “함께 일해줄 가족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