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제주도에서 열린 ‘2022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행사 현장에서 만난 대구 지역 섬유염색업체 정모 사장은 “정말 안 오른 게 하나도 없다”고 호소했다. 정씨는 “고(高)환율 여파로 수입해오는 실, 염료 등 원부자재 가격이 전부 올랐고, 스팀공급원인 LNG 가격은 1년 전보다 160% 가까이 급등했다”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장 가동률이 6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7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2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에 참석해 특별강연하고 있다./뉴시스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에서 열린 중기중앙회 행사에 참석한 400여 명의 중소기업 사장들은 “기업 하기 너무 힘들다”며 행사장 곳곳에서 불만을 쏟아냈다. 중소기업인들은 세미나 중간 쉬는 시간과 저녁 식사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이렇게 힘든데, 정치권은 민생에는 관심도 없이 쓸데없는 문제로 싸움질이나 하고 있다. 지금이 그럴 때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업종 불문 ‘4중고’에 시달리는 중기

중기중앙회가 이달 중소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65%는 최근 경제 상황을 ‘위기’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 위기라고 대답한 86.8%는 지금의 경제 위기가 최소 1년 이상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소기업인들은 가장 부담을 느끼는 요인으로 ‘원자재가격 급등’(76.6%)을 꼽았다. 그 뒤를 이어 ‘금융비용(이자) 부담 증가’(13.5%), ‘환율 상승’(7.1%), ‘인력난 심화’(2.8%) 순으로 나타났다.

/일러스트=박상훈

용지 도매업을 하는 장모(68) 사장은 “펄프 값이 많이 올라 올해만 대기업 제지 회사에서 가격을 10~15%씩 3번이나 인상했다”고 말했다. 물티슈 등 생활용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의 한모(71) 사장도 “물티슈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직포가 중국, 대만, 일본, 인도네시아에서 들어오는데 올해 20% 이상 올랐다”며 “그런 와중에 공장 돌릴 사람도 구하기 어려워 난감한 상황”이라고 했다.

가구업계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인천에서 사무용 가구용품점을 하는 김모 사장은 “가구 원자재가 되는 목재를 수입하는데 환율 영향으로 40% 이상 올랐다”며 “가구를 사려는 사람은 없고, 공장에서 일하려는 사람도 없어 언제까지 공장을 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한가구산업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한 뒤 수출하는 게 아니라 국내에 파는 가구업계 특성상 환율이 치솟으면 버티기 어렵다”고 했다.

◇”기업은 피를 토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뭐하냐”

중소기업인들은 정치권을 향해 “정쟁 그만하고 경제 위기에나 대응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경열 한국공간정보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복합 위기의 상황 속에서 기업이 피를 토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정치권이 사소한 문제를 갖고 티격태격할 때마다 눈살 찌푸리게 된다”며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노력으로 될 게 아니고 정치권, 정부 다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다. 김권기 한국가방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서로 다른 분야 협동조합들끼리도 협업 논의를 하는데 정치권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도 너무 보기 싫다”며 “도와줄 생각은 일도 없이, 잘되는 산업에 숟가락만 얹으려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경기 파주시에서 화장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한 대표도 “국회에 원래 기대치가 낮았지만,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싸우기만 하니 답답하고 울분이 터진다”며 “윤석열 정부가 약속한 규제 해소에나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도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은 중소기업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인력난 등 4중고에 원자재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 최악의 경영난에 직면해 있다”며 “정부나 정치권이 기업과 같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데 다들 말로만 ‘민생’ ‘민생’ 하고, 실제론 뭘 했느냐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정치권과 정부가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정우 서울경인가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원자재 값이 급등한 업종은 원·부자재 공동 구매 때 정부가 지원금을 준다든지 하는 방안을 마련해줘야만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