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서울 시내 한 빌라 외벽에 전력 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한국전력은 다음 달부터 전기 요금을 kWh당 7.4원 올리기로 했다. 4인 가구 기준 전기 요금이 2270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도시가스 요금도 4인 가구 기준 5400원이 오른다. /김지호 기자

전기 요금이 4분기에도 10% 안팎으로 오르면서 올해만 kWh(킬로와트시)당 19.3원 오르게 된다. 작년 말과 비교해 요금 인상률은 17.9%에 달한다. 1980년대 이후 연간 최대 상승률이자 1·2차 석유 파동 당시인 1974년(85.1%), 1980년(35.9%), 1979년(34.6%)에 이어 넷째로 높은 상승률이다. 탈원전을 이유로 5년 내내 전기 요금 인상을 눌러온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말에야 올 2·4분기 10.6% 인상안을 들고나왔지만, 적절한 인상 타이밍을 놓친 탓에 국민이 느끼는 전기 요금 인상 충격은 더 크다.

문제는 요금 인상이 올해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하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진 상황에서 에너지 소비가 많은 겨울철까지 겹쳐 내년엔 올해보다 더 큰 폭의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특히 글로벌 경기 침체가 가시화한 상황에서 전기·가스 요금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에너지를 많이 쓰는 제조업 위주인 우리나라 산업계에 미치는 충격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산업용 더 큰 폭 인상… 소비 절감 효과 기대

한국전력과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4분기 전기 요금을 계획된 kWh(킬로와트시)당 4.9원 외에 추가로 올리면서 9년 만에 용도별로 차등 인상했다. 지난해 4분기 3원 인상을 비롯해 올 들어 4월과 7월 인상은 주택·산업 등 용도별 전기 요금과 무관하게 일괄적으로 적용됐다. 하지만 1일부터 kWh당 7.4원 오르는 주택용은 인상률이 6.8%지만, 도금·주물과 같은 중소 제조업이 주로 사용하는 전기 요금은 10%(11.9원), 반도체·철강·화학 등 대기업 제조 현장에 들어가는 고압용 전기 요금은 17.3%(16.6원) 올라 주택용보다 2배 이상 오른다.

물가에 끼치는 영향과 소비자 반발은 최소화하면서도 쌓이는 한전 적자와 에너지발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산업용을 대폭 올린 것이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산업용 전력 수요는 전체의 55%를 차지한다”며 “산업용을 상대적으로 많이 올린 건 에너지 소비를 줄이자는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반도체·자동차·정유 등 전력 다소비 업종 기업들은 대부분 상반기 실적이 좋았다”며 “원가의 절반 이하에 그친 전기 요금이 어느 정도 이바지했다는 측면에서 고통 분담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전기 요금 인상에 따라 비용 부담이 커진 산업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전기 요금 발표 직후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 상황에 놓인 우리 기업들의 경영 활동 위축이 가속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 재계 관계자는 “원가에 기반한 요금 체계를 확립하겠다고 하면서 송전망 등 추가 설비 비용을 기업이 부담해 상대적으로 원가가 싼 산업용 요금을 더 올리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내년엔 대폭 인상 불가피

국제 유가가 여전히 배럴당 80~90달러를 유지하는 고유가 상황에서 내년에도 전기 요금 추가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력 업계에 따르면 4분기 요금 인상으로 한전의 적자 축소 규모는 1조원에 그친다. 올해 예상되는 적자 30조원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치다. 유승훈 교수는 “이번 요금 인상은 한전 적자 해소보다는 기업과 가정에 전기 소비를 줄이라는 ‘가격 신호’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의 올해 예상 적자는 3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해소하려면 4분기에만 kWh(킬로와트시)당 260원을 올려야 한다. 현재 전기 요금이 120~130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2배 인상률이다. 정부는 앞으로 2~3년에 걸쳐 전기 요금을 올려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지금과 같은 에너지 가격의 고공 행진이 이어진다면 이조차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전 정부가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2020년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을 분기별로 반영하겠다며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 기준연료비(기본요금)와 기후환경요금 등으로 요금 체계를 구체화했다. 박종배 교수는 “도매 가격에 연동하는 선진국과 같이 전기 요금 결정을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들에도 전기를 아끼면 각종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절감을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