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이후 글로벌 물동량 폭증으로 고공행진하던 해운 운임 지수가 최근 급락하고 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쇼크로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물동량이 감소하고 해운 운임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해운 운임이 경기 선행 지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가 이미 경기 침체 국면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세계 각국에서 소비 심리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물동량이 줄고 있다”면서 “미 연말 세일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를 앞둔 3분기는 해운업계 최대 성수기인데 올해는 실적 부진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박상훈

◇해운 운임 지수 올해 62% 폭락

1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해운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30일 1922.95를 기록했다. 올해 초(5109.6) 대비 무려 62.3% 감소한 것이다. SCFI는 세계 15개 노선의 운임을 종합해 계산한 지수로 수치가 높을수록 해운 운임이 높다는 의미다. SCFI가 2000 밑으로 내려간 것은 2020년 11월 이후 약 2년 만에 처음이다. SCFI는 최근 16주 연속 하락하고 있다. 이달 7일에는 중국이 국경절 연휴 기간이라 이 지수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14일에 나오는 SCFI는 지난달 말보다 더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해운 운임 지수가 하락하는 것은 글로벌 물동량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은 배에 물건을 실을 수 있는 선적 공간 대비 실어야 할 물건이 많으면 운임이 올라가고, 반대로 선적 공간 대비 물건이 적으면 운임이 내려가는 구조다. 미국 통관조사기관 데카르트데이터마인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으로 향한 컨테이너 물동량은 전년 같은 달 대비 11% 감소했다. 지난 8월에 비해서도 12.4% 줄었다.

글로벌 물동량 증감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미국 서부 롱비치·LA항의 적체 현상도 물동량 감소와 함께 크게 개선된 상황이다. 미국행 화물 컨테이너의 40%가 들어가는 관문인 이들 항구 앞바다에는 현재 30여 척의 선박이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무려 100여 척에 달하는 선박이 대기했었지만 물동량이 감소하면서 적체 현상이 풀리고 있는 것이다. 컨테이너선은 지난 7월 롱비치항 앞바다에서 입항을 위해 평균 7.3일 대기했지만 지난달에는 대기 기간이 5일로 줄었다. 외신들은 소비 둔화로 지난 3일부터 2주간 예정됐던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가는 컨테이너선 60여 편의 운항이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해운업 잔치는 끝났다?

코로나 특수 덕분에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해오던 해운업계도 해운 운임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이제는 실적 부진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2조5501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HMM은 올 1분기 3조148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올 2분기에는 2조9371억원으로 1분기보다 감소했고 3분기 영업이익도 직전 분기 대비 3800억여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팬오션의 영업이익도 지난 2분기 2388억원에서 3분기에는 1916억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증권사들은 보고 있다.

다만 해운 운임이 코로나 이전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어서, 해운업 불황을 전망하기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 이전 SCFI는 현 지수의 절반도 안 되는 700~900선이었다. 한 해운업체 임원은 “그동안 해운 운임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서 수출 기업에도 부담이 됐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운임이 정상화 과정을 밟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코로나 이전 수준까지 내려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선사들이 앞다퉈 발주한 선박들이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노선에 투입되지만, 노후 선박 교체 수요를 감안하면 선박 증가세도 운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해운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이석주 해양진흥공사 해운정보팀장은 “해운업은 짧은 호황기에 바짝 벌어 긴 불황을 대비하는 업종”이라며 “다행히 올해 상반기까지 호황으로 선사들의 재무 상태가 좋아진 만큼, 사업 다각화에 나선 덴마크 머스크나 해운 서비스 강화에 집중한 스위스 MSC처럼 각자의 상황에 맞는 전략으로 이후의 불황을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