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어울림광장에서 열린 '2022 지구에게 아름다운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섬유로 만든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걷고 있다. 이번 패션쇼에서는 리사이클 섬유, 비건 소재 등을 활용해 환경을 보호하고 기후위기에 맞서는 다양한 패션을 선보인다. 2022.7.7/뉴스1

재생플라스틱 소재 중 가장 널리 쓰이는 압축 페트(PET) 가격이 치솟고 있다. 23일 환경부 환경통계정보에 따르면 플라스틱 생수병 등을 압축해 얻는 압축 페트의 지난달 국내 평균 가격은 1㎏당 442원으로 1년 전(1㎏에 328.9원)에 비해 34.3% 뛰어, 2013년 12월 이후 8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른 폐플라스틱 소재도 사정은 비슷하다. 폴리에틸렌(PE) 플라스틱을 세척·분쇄한 PE플레이크는 지난달 1㎏에 680.8원으로 1년 전보다 22.3% 올랐고, 같은 계열의 폴리프로필렌(PP)를 분쇄한 PP플레이크는 628.5원으로 같은 기간 25.4% 치솟았다.

과거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폐플라스틱이 귀한 몸이 됐다. 업계를 불문하고 친환경 제품 생산과 판매가 늘면서 폐플라스틱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업계를 필두로 기업들이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앞다퉈 뛰어들고, 과거 거의 재활용되지 않던 PP플레이크 같은 소재도 최근 기술 발달로 재활용 쓰임새가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3년부터 페트를 제조할 때 재생 원료를 30% 이상 사용하도록 의무화돼 폐플라스틱의 몸값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 화성시의 한 페트 재활용 업체에서 직원들이 재활용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 많은 기업이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친환경 제품 생산을 늘리고, 관련 사업에 뛰어들면서 폐플라스틱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플라스틱 생수병 등을 압축해 얻는 ‘압축 페트(PET)’ 가격은 1년 전보다 34.3% 급등했다. /연합뉴스

◇'업종 불문’ 뛰어든 폐플라스틱 사업

석유화학 업체들은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국내 최초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헤드램프 소재로 쓰이는 합성수지 제품을 상업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SK케미칼은 재활용 페트를 이용해 고품질 재활용 섬유를 개발하고 있고, 현대오일뱅크도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LG화학은 폐플라스틱을 고온·고압 수증기로 분해해 새 플라스틱의 원료로 재활용하는 공장을 짓고 있고, SK지오센트릭도 울산에 국내 최대 규모 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를 건설하고 있다.

폐플라스틱 가격 가격 추이

폐플라스틱 관련 사업이나 친환경 제품 개발은 업종을 불문하고 필수가 되고 있다. 노스페이스를 비롯한 스포츠웨어, 의류 업계는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섬유나 원단 사용을 늘리고 있고, 생활용품 기업 락앤락은 최근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재활용한 에코백을 만들었다. LG생활건강은 폐플라스틱으로 화장품 밀폐용기를 만들고, LG유플러스가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리모컨을 출시했다.

이처럼 폐플라스틱 수요가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당분간은 수급 불균형에 따른 폐플라스틱 가격 오름세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올해 4분기 대형 제조업용 전기요금이 17.3% 뛰어 플라스틱을 세척해 분쇄하는 과정에서 생산 비용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량 확보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일부 기업은 재활용 업체들과 업무협약(MOU)을 맺거나 폐플라스틱 수거·운반 등 사업에 직접 진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폐플라스틱 공급이 원할하게 안 될 경우를 대비해 플라스틱을 수거하는 재활용 업체 몇 곳과 MOU를 맺고 물건을 꾸준히 공급받고 있다”고 했다.

◇”폐플라스틱 재생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 높은 가격 지속될 것”

폐플라스틱 가격 상승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유럽의 경우 수요 급증으로 올해 초 폐페트가 새 페트보다 비싸게 거래되기도 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올 정도다.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 정보 제공 기업 ICIS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올 들어 폐페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200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연합이 페트병을 제조할 때 2025년부터 재활용 플라스틱을 최소 25%, 2030년부터 최소 30% 포함하도록 요구하면서 현지 업체들의 수요가 늘어난 데다가 공급망 불안정 여파로 공급도 잘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폐플라스틱 재생 사업은 각국의 ‘탄소 중립 달성’ 목표와 연계돼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페트병에 의무적으로 재활용 플라스틱을 포함하도록 하는 것도 탄소 중립을 위한 규제 차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의 관건은 재활용하기 어려운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여부”라고 말했다. 폐플라스틱을 수입해 매립해주던 태국, 중국 같은 국가들이 2025년부터 수입을 전면 금지하기 때문이다. 재활용 가치가 떨어지는 폐플라스틱을 다른 나라에 넘겨온 선진국들로서는 이들 물량까지 친환경적으로 재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